[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어느 봄날의 오후
입력 2013-03-07 19:58
오랜만에 서울숲 산책에 나섰다. 지난주만 해도 시린 칼바람에 귓불을 감싸고 쫓겨 다녔는데 경칩이 지나서인지 마주 오는 바람이 시원하니 싫지가 않았다. 만나기 힘들었던 숲 고양이들도 볕 좋은 마른풀 위에서 노글노글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연못의 잉어들은 얼음장이 사라진 초록빛 수면 위를 연신 뻐끔거리며 싱싱한 봄기운을 반기는 듯했다.
연못다리 위에서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도 가벼워진 옷차림만큼 가뿐하니 밝아보였다. 북풍한설에 꽁꽁 웅크렸던 몸과 마음이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스르르 녹아내리니, 그야말로 무장해제. 야들야들해진 마음으로 여기저기 봄소식을 전했더니 멀리 중국, 일본에서도 살짝 열린 꽃봉오리에 봄 향기를 담아 보내왔다. 언제 겨울이었는가 싶다.
짧은 봄맞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해병대 옷을 입은 아저씨와 중절모를 쓴 노신사를 보았다. 두 분을 보는 순간 뜬금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이었다. 군대, 중절모를 좋아하셨던 실향민이신 외할아버지, 그리고 전쟁. 아마도 새벽에 본 기사 때문이리라. 북한이 휴전협정을 무효라고 선언했다며 불바다 운운하는 기사를 보고 꿈인가 생신가 싶었다.
그러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탈락한 야구대표팀의 기사에 더 눈길이 쏠렸고, 이내 잊어버리고는 발걸음도 가볍게 봄 구경에 나선 것이다.
외가 쪽 어른들 모두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부산을 거쳐 서울에 정착하셨다. 외할머니는 평양에 두고 온 동생들이 있다 하셨고, 이모할머니는 전쟁 통에 남편과 사별하고 한강다리가 끊기던 날 두 아이와 생이별을 하셨다.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듣고 자랐지만 전쟁세대가 아닌 이상 그저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지구촌 마지막 분단국가. 전쟁을 쉬고 있는 나라. 참 현실감 없는 현실이건만 이 글을 쓰는 중간에도 일본인 친구의 안부메일을 받았다. ‘괜찮은 거니? 무섭지 않아?’라고 묻는 그에게 ‘어차피 현대전은 피할 시간도 장소도 없음. 살아남으면 찾아갈게 재워줘’라고 객쩍은 소리 해댔지만 이 화창한 봄날, 생존을 걱정해야 하다니 마뜩지가 않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마저 공백 상태니 답답하고 불안하다. 국민행복시대의 나라든 사람이 먼저인 나라든 그 어떤 정치적 명분도 국가의 안녕보다 앞설 수 없다. 국가의 근본은 국민이다. 그런데 그 근본이 지금 안녕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이를 바로잡아 안녕케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정치 아닌가.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