봅슬레이 국제대회 사상 첫 금… 고독한 국가대표들 빛나는 쾌거 ‘무르익는 평창의 꿈’

입력 2013-03-07 19:14


4인승 봅슬레이 썰매 단 한 대, 실업팀 1곳, 경기장은 ‘0’.

한국 동계스포츠는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스피드스케이팅을 제외하면 척박한 환경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겨울의 F(포뮬러) 1’이라고 불리는 봅슬레이는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사랑받고 있지만 한국은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실제 국내에 보유 중인 썰매는 봅슬레이 3대와 스켈레톤 3대가 전부다. 봅슬레이에서 가장 잘 알려진 4인승 봅슬레이는 2008년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가 사비를 털어 산 한 대 뿐이다. 이에 한국은 경기가 겹칠 경우 현지에서 썰매를 대여해 사용하고 있는 처지다. 일본은 썰매만 30여대를 보유하고 있다.

연습을 하기 위한 장소도 국내에는 마땅치 않다. 현재 국내에는 봅슬레이 경기장이 단 한 곳도 없다. 강원도 평창에 간이 경기장이 있지만 정식 경기장이 아니다. 한국이 2018년 평창올림픽을 대비해 900억원을 들인 경기장은 2016년 말에나 완공된다. 일본이 나가노를 비롯해 두 곳의 썰매 경기장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한국 봅슬레이는 국가대표를 뽑을 때 일본에서 경기를 치른다. 등록 선수는 고작 25명에 불과하고 실업팀도 강원도청이 유일할 정도로 한국은 봅슬레이 불모지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한국 봅슬레이가 국제대회에서 사상 첫 정상에 오르는 기적을 이뤘다.

파일럿 원윤종(28)과 브레이크맨 전정린(24)으로 구성된 대표팀은 7일(한국시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2013 아메리카컵 7차 대회 2인승에서 1·2차 시기 합계 1분53초91의 기록으로 19개 팀 중 1위에 올랐다. 한국 봅슬레이가 국제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2010년과 2011년 아메리카컵에서 세 차례 은메달을 목에 건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대표팀은 동시에 이번 대회의 성적으로 세계랭킹 8위에 올라 2013∼2014시즌 월드컵에 남자부 2팀을 내보낼 자격을 얻어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출전 전망을 밝게 했다.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 세계랭킹 1∼4위 팀에는 다음 시즌 월드컵 출전권 3장을, 5∼10위 팀에는 2장을 준다.

대표팀은 올 시즌 처음으로 익숙하던 미국·캐나다를 떠나 유럽에서 각종 대회에 참가하며 전지훈련을 치른 게 효과를 봤다. 팀을 둘로 나누어 원윤종이 이끄는 1진은 월드컵 대회에 내보내고 2진은 유러피언컵에 출전시켜 선수 각자가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도록 했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강신성 회장은 “열악한 환경에도 투지를 발휘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면서도 “여전히 상무팀이나 실업팀이 없어 훈련 수당에만 의존하다 보니 유망한 선수가 국가대표를 포기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며 지원을 호소했다. 대표팀은 8일 열리는 8차 대회 2인승에 출전해 2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