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바리스타들의 ‘착한 커피’ 맛보셨나요… 어르신들과 일자리 나누며 봉사하는 ‘카페 외할머니’

입력 2013-03-07 18:16 수정 2013-03-07 21:33


철물점 창고였다는 8평(26.4㎡) 공간에는 3월의 따뜻한 봄햇살이 구석구석 내려 앉아 있었다. 이 작은 공간은 4개의 테이블과 의자들, 소규모 주방과 중형 로스터가 사이좋게 나눠 쓰고 있었다. 7일 오전 만난 김헌래(43) 목사는 이곳에서 공정무역으로 수입한 르완다산 커피 생두를 볶고 있었다.

갓 볶은 커피향이 가득한 이곳의 이름은 ‘카페 외할머니’(사진)다. 여느 카페와 다름없는 모습이지만 이 카페는 등불감리교회 담임인 김 목사가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문을 연 ‘마을기업’이다. 카페에서는 나이가 많아서, 특별한 기술이 없어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지역 내 노인 6명이 노동의 기회와 대가를 제공받고 있다. 카페 이름은 ‘밖(外)에 계신 할머니’ ‘외국인 노동자의 할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라는 3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김 목사가 카페를 구상하게 된 것은 2011년 11월 부임심방 때였다. 심방 자리에서 황경자(69·여) 권사는 김 목사에게 교육기관에서 문전박대 당한 일화를 전해줬다. 김 목사는 “당시 권사님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고 민간 바리스타 교육기관을 찾았는데, ‘나이가 많아 교육이 불가능하니 돌아가시라’는 얘기를 듣고 많이 낙심해 계셨다”며 “그날 저녁 아내와 함께 ‘그러면 교회가 한 번 해보자’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결심은 섰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출석교인 20여명의 작은 교회가 노인 고용을 위한 카페를 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김 목사 부부는 정부가 지원하는 ‘마을기업’에 대한 소식을 접했고, 이듬해 2월 부평구청에 마을기업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이후 과정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3월 기관심사를 통과해 4월 구청으로부터 5000만원의 창업 자금을 지원받았다. 약 두 달에 걸친 인테리어 공사 끝에 지금의 ‘카페 외할머니’가 탄생했다. 현재 카페에서는 6명의 노인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10시간을 일하면 카페에서는 월 20만원의 급여를 지급한다. 김 목사 부부의 수고비를 따로 지급하지 않아도 월세와 운영비, 재료비 등을 제하면 매월 빠듯한 형편이다. 하지만 김 목사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김 목사는 “계절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고, 질 좋은 원두를 사용하다보니 제법 입소문이 났다”며 “하굣길 여학생들부터 어린 아이를 안고 오는 젊은 엄마들, 수녀와 승려 등 다양한 분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의 공동체성이 붕괴되고 있는 사회에서 누구든지 찾아와 지친 마음을 회복하고 돌아가는 공간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카페 외할머니의 목표는 사업 번영이나 매장 확장이 아니다. 더 많은 노인에게,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김 목사는 “지역교회들이 무너져 가는 마을 공동체를 살리는 일을 해 주면 좋겠다”며 “어려운 이들의 실제적 필요를 채워주면 선교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부평=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