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전쟁’이 남긴 그늘, 詩로 풀어내다… 전기철 다섯 번째 시집 ‘누이의 방’ 펴내

입력 2013-03-07 17:58


전기철(59·사진) 시인은 어릴 때 ‘약 아이’였다. 6·25전쟁으로 형을 잃은 아버지가 아편에 손을 대자 어머니는 “주삿바늘만 찾는 아버지의 전쟁을 끝내야 한다”며 어린 전기철의 오줌을 받아 먹였다고 한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 ‘누이의 방’(실천문학사)은 그 ‘약 아이’가 시인이 되어 쓴 시가 이 세상에 어떤 약이 되었는가에 대한 비망록이다.

“휴전협정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버지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면/ 개들이 나를 보며 침을 흘렸고/ 먼 곳에서 거세된 싸움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중략)// 나는 약 아이였다/ 함부로 아무거나 먹어서도 안 되고 아무 데서나 오줌을 눌 수도 없는/ 약 아이였다”(‘약 아이’ 부분)

베이비붐 세대 첫 주자로서의 시인은 전후 세대가 남긴 상처와 회한에 대한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으니 그 상처는 시인의 형제들에게도 고스란히 대물림됐다.

“아버지 얘기는 꺼내지도 마./ 누이는 표정 없이 콩나물국을 푼다./ 나는 젯밥에 꽂힌 숟가락처럼 우두커니 앉아/ 막걸리에 어린 누이의 얼굴을 본다./ (중략)/ 나는 절망의 장사꾼이야. 아버지는 매물로 낼 수도 없는 귀신이라고. 세상이 내게 바리케이드를 치고 인간들은 방언만 지껄여대. 왜 나한테는 이렇게 급커브 길밖에 없는지…. 시간은 돌팔이 의사더라.”(‘낙원시장 89호 금이네 집’ 부분)

곧 환갑을 바라보는 오빠에게 털어놓는 이복누이의 푸념을 들어보면 ‘세월(시간)은 약’이라는 말도 다 거짓이다. 그에게 누이는 어떤 존재인가. “이혼하고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며/ 팔십만 원짜리 간병인으로 살아가는 누이”(‘누이의 방’)가 있고 “경찰서에서 누이를 데리고 나왔다./ 누이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뱉고는/ 저만치 뒤따라왔다.”(‘부러진 봄’)의 누이가 있고 “노래방에서 밤새 일하는 누이에게/ 서정시란 몇 푼어치의 위안인가?”(‘여자 투우사’)의 누이가 있다. 그에게 누이는 대체 몇 명이라도 된단 말인가. 아니, 세상의 모든 상처 입고 헐벗고 정에 굶주린 누이들이 전기철의 육친이라도 된단 말인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상처받은 형도 있다. “약속의 땅이라도 발견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아버지가 죽었을 때/ 장의사가 되어 나타난// 형은/ 곡두의 새처럼/ ‘불행해서 기뻐요’를 정말/ 기쁜 듯이 뽑아댔다.”

정신분열로 인해 가족을 떠나 홀로 떠돌던 형의 귀환처럼 전후 세대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제물로 바친 뒤에야 비로소 전쟁이 남긴 기나긴 원혼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단 말인가. 아닐 것이다. 터널은 끝나지 않고 시간은 돌팔이 의사인 것이다. 시가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은 여기서 자명해진다.

그런데도 전기철은 시를 쓴다. 구원도 없고 치유도 없는 시를 대체 무엇 때문에? 소월의 손녀인 피아니스트 김은숙씨와 카페에서 만나 나눈 대화 “우리 집안은 시 때문에 저주를 받은 거예요”(‘죽음과 소녀’)에 대답이 있을 법하다. 소월의 손녀가 ‘시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는 말의 역설, 즉 ‘집안의 저주 때문에 시를 쓰지요’의 의미를 확장시켜보면 베이비붐 세대의 시인들은 이전 시대의 불우와 저주를 풀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슥한 자정 너머 인사동을 전전하던 전기철의 한 맺힌 내압(內壓)이 이 시집으로 말끔히 가시길….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