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맞은 두 시인 김현승 자녀들이 회고한 ‘나의 아버지’
입력 2013-03-07 17:57
“어머니 희곡 비판하다 인연” <양명문 시인의 아들 성태씨>
“높은 예술혼… 바흐 닮은 분” <김현승 시인의 딸 순배씨>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시인 김현승(1913∼1975)의 막내딸 순배(57·피아니스트)씨와 가곡 ‘명태’의 작사가로 유명한 양명문(1913∼1985)의 3남 성태(55·태평양은행 부행장)씨가 아버지에 대한 추억담을 ‘나의 아버지’란 제목으로 계간 ‘대산문화’ 봄호에 기고해 눈길을 끈다.
“월트 휘트먼의 시구처럼 ‘창 밖에는 라일락이 찬란하게 피어있는’ 4월 어느 날 그분이 급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을 때에도 나는 그 이별을 온전히 슬퍼하지조차 못했던 것 같다.”
스무 살 때 아버지를 여윈 순배씨는 유난히 커피와 과자를 좋아하던 아버지 김현승의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이런 시절의 기억 속에서도 지울 수 없는 것은 그 유명한 커피향기이다. 일단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반기는 것은 마당 가득 채워진 커피 향이었다. 그러니까 그 시절의 ‘별다방’이 우리 집이었던 거다. 커피는 인스턴트가 아닌 원두커피였다. ‘Hills Bros.’라고 찍혔던 원형 양철통 속의 커피가 아버지의 보물이었다.”
커피를 좋아해 ‘다형(茶兄)’이라는 호를 썼던 김현승은 오남매를 두었지만, 기호식으로 즐기던 과자는 가끔 막내딸에게만 건네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순배씨는 음악 선생님이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자신에게 아버지가 레슨비를 마련해 건네주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아, 아버지가 그 하루 동안 나의 레슨비를 마련하시노라 어떤 애를 쓰셨는지 당시의 나는 알 수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처럼 영원히 철들지 않는 천둥벌거숭이 막내의 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버리지 못했었다.”
순배씨는 이제 음악가이자 칼럼니스트답게 아버지의 예술가로서의 고독을 바흐에 비유한다. “마치 바케트 빵처럼 겉으로는 부드러운 속살의 감격을 지녔다는 점, 높은 예술혼을 지니고 그것을 생업으로도 삼으셨지만 결코 빵을 위해 구차해지지 않으셨다는 점, 처자식에 대한 애정과 의무 또한 중하게 여겼다는 면들에서 아버지와 바흐는 많이 닮으셨다.” 순배씨는 어떤 유산보다 값진, 아버지가 물려주신 정신과 신앙의 힘에 감사를 표했다.
양명문 시인의 3남 성태씨 역시 아버지가 46세 때 태어난 막내여서 부친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기억부터 떠올린다. “아버지는 산을 좋아 하셔서 우리 3형제와 강아지를 데리고 봉원동 뒷산을 오르곤 했다.”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시절, 서울 신촌 봉원동에 살던 양명문의 집은 제자로 들끓었는데, 그 가운데는 시간 강사인 전혜린씨도 있었다고 한다.
양명문의 문단 인맥은 두텁기로 유명해서 시집 ‘화성인’ 출판기념회가 열린 1956년 1월, 박수근 화백, 한묵 화백, 명동백작 이봉구, 월탄 공초, 이희승, 정비석, 선우휘, 김억, 박인환 등이 참석했는데, 정작 박인환은 방명록에 ‘앞으로 오래 삽시다’라고 써놓고 몇 달 뒤에 별세했다는 성태씨의 이야기는 또 다른 문단 비사이기도 하다.
성태씨는 어머니(극작가 김자림)와 아버지의 로맨스에도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어머니의 친척 되시는 극작가 오영진 선생의 중매로 두 분이 만나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문학 초년생이었다. 어머니가 희곡 ‘운명’을 써서 오영진 선생에게 갖고 가자 오영진 선생은 양명문 시인에게 가서 평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단다. 아버지 왈 ‘이런 작품은 차마 문학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에 어머니가 질세라 아버지께 반박하시는 중에 연애감정이 싹 터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사무국장은 “올 탄생 100주년을 맞는 작가는 이밖에도 김동리 김동석 박계주 이태극 조명암”이라며 “자제분들에게 원고를 청탁해 ‘나의 아버지’ 코너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는 5월 2일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사진=대산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