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여성의 돈·힘이 가져올 변화를 주목하라… ‘빅 보스가 된 여자들’
입력 2013-03-07 18:01
빅 보스가 된 여자들/매디 디히트발트·크리스틴 라손(북돋움)
여자 대통령이 중진국 한국에서도 탄생했다. 그래서 ‘여자를 주목하라’고 외치는 이 책은 눈길을 끈다.
하지만 미국의 두 여성작가가 함께 쓴 이 책은 1세기 전만 해도 참정권조차 없었던 여성들이 경제권을 쥐고 정치·사회 지도자로 등장하는 현상의 측면을 소개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성큼 나아가 이제 돈을 거머쥐었고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여성들이 사회에 가져올 변화를 가치의 측면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에 점수를 주고 싶다.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돈을 쓰고, 일하고, 소통하고, 정치한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예컨대, 여성은 자금을 투자할 때 모험적 성향을 보이는 남자들보다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또 자녀나 다른 가족을 배려하는 성향도 강하게 나타난다. 수직적 관계보다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 금융사 등 기업들이 이런 여성들의 다른 취향을 빨리 간파하지 못하면 경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영악한 회사는 발 빠르게 움직인다. 다국적 슈퍼마켓 체인인 세이프웨이가 값은 좀 비싸도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여성의 소비성향을 읽고 ‘오(O)’라는 유기농 상표를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딜러들은 구매과정에서 아내 입김이 큰데도 대체로 여성을 무시한다. 하지만 GM 아카디아는 사춘기 딸을 둔 엄마를 수석엔지니어로 삼아 어머니를 위한 모델을 개발했다. 스테이션왜건과 미니밴을 절충한 이 7인승 모델(2006년)은 20개가 넘는 수납공간, 변환이 용이한 내부공간으로 여성 고객의 사랑을 받는다. 씨티그룹은 노후 걱정을 더 하는 여성을 위해 상품 자체가 아니라 삶을 설계해주는 방향으로 고객을 응대하도록 교육시킨다.
경제력과 경제권을 거머쥔 여성들은 기업 마케팅과 조직 문화뿐 아니라 가족 문화도 바꾸어 간다. ‘행복하려면 아빠도 값을 치러야 한다’ ‘사다리를 걷어차고 원하는대로 계단을 만들라’ ‘돈버는 여자들은 가족을 구한다’ 등의 눈길 끄는 소제목은 여성들이 어떻게 보수적인 가족 제도에 균열을 일으키는지 짐작케 한다.
여성들은 정치판도 바꿀 수 있다. 이미 미국 대선의 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섰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지핀 ‘힐러리 효과’로 많은 여성들이 정치 진출을 희망하는데, 저자들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여성 대통령까지도 꿈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뉴햄프셔든 인도든, 여성이 입후보하거나 당선되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상황이 변화한다. 여성이 전쟁보다는 교육을, 무기보다는 깨끗한 물을 먼저 장려해서가 아니다. 다양한 의견, 협상 테이블에서 고려하지 않았거나 간과하던 생각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부상, 그것은 남성에게 재앙일까. “어느 한쪽이 다른 성을 지배해야 하는가? 그보다는 여성의 경제적 해방으로 보다 조화로운 세상, 공존하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저자들은 낙관한다. 다양성이 확보되는 만큼, 여성의 사회진출은 제로섬이라는 기존의 게임구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관점이 다른 여성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면 이는 사회 전체에 이로운 방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성의 돈과 힘이 일으킬 혁명에 대비하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곳곳에서 저자들의 직관이 빛난다. 하지만 매력적인 주제만큼 글이 설득력 있게 전개되지 못해 아쉽다. 김세진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