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인재 떠나게 하는 닫힌 사회

입력 2013-03-07 17:27


“조국에 헌신하겠다는 꿈 포기한 김종훈 후보자… 우리의 편협한 시각이 문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4년 한 특강에서 “1명의 인재가 1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인재론’을 주창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MIT를 거쳐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진대제, MIT 공학박사 출신 황창규씨를 영입했고 결과는 반도체·전자 신화로 이어졌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소니와 핀란드 노키아 등에 뒤처졌던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TV·휴대전화 등 거의 모든 전자부문에서 세계 1위로 우뚝 선 데는 해외파 인재들의 공이 컸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2007년 6월 애플의 아이폰 출시로 위기에 놓였을 때도 삼성은 S(슈퍼)급 인재 영입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1년 이상 늦게 스마트폰을 내놓고도 지금은 애플을 제치고 스마트폰 왕좌까지 차지했다. 반면 천재 스티브 잡스를 잃은 애플이 추락하는 모습은 한 명의 인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어 한국 땅을 다시 밟은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고, 미국에서 살더라도 더 나은 미래가 보장돼 있었다. 그런 그가 개혁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환멸을 느끼고 고국을 등지는 현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15세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세계 최고 IT연구기관인 알카텔-루슨트 테크놀로지 벨연구소 사장까지 오른 김 전 후보자는 가난과 역경을 딛고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신화적 인물이다. 고교 시절 편의점 아르바이트, 신문배달 등을 하며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지만 꿈을 잃지 않았다. 10년간 2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는 그는 메릴랜드 대학에서 평균 5년 걸리는 공학박사 학위를 2년 만에 따내 전설로 통한다.

32세에 직원 1명을 데리고 벤처기업을 창업한 그는 ‘5년 안에 10억 달러 가치 있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도전해 그 목표를 이뤘다. 그가 세운 벤처기업을 10억 달러에 사들인 세계적 통신장비업체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그에게 전략부문 사장과 산하 연구기관인 벨연구소 사장직을 맡겼고, 그는 망해가던 벨연구소를 살려냈다.

평등과 기회의 나라라고 하지만 외국인에 대해선 흑인이나 히스패닉보다 특히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과 벽이 높은 곳이 미국이다. 그런 나라가 그의 능력을 인정해 세계 최고 IT연구기관의 수장을 맡기고, 미국 내 핵심정보를 다루는 중앙정보국(CIA) 자문위원을 맡겼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성장엔진을 다시 돌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달라며 삼고초려해 그를 데려왔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부의 벤처 붐과 노무현 정부의 IT산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IT강국으로 부상했지만 토목사업에 치중한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후발국들에 뒤처지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멘토인 70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첨단 IT정책을 관할했으니 오죽했을까. 김 전 후보자는 정체된 대한민국호를 살려낼 기대주였다.

그러나 그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는 편협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를 ‘사실상 미국인’이라거나 ‘CIA 스파이’ 운운하며 몰아붙였다. 그는 1000억원의 국적포기세를 내더라도 고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했고, 그에게 자국 고급정보를 많이 노출시킨 미국이 오히려 괜찮다는데 세상은 그의 순수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벤처기업을 나스닥에 상장한 후 주식의 40%를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목적을 향해 열심히 일하는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자신의 열정을 몰라주는 고국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당파를 떠나 ‘반대를 위한 반대’나 색안경을 끼고 보기보다 왜 잘해보라고 박수를 쳐주진 못했을까. 그는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몇 년 동안 아이디어를 모아뒀던 수첩들을 들춰보며 뭘 할까 설레었다고 한다. 조국에 헌신하겠다더니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떠난 그도 원망스럽지만 그가 펼쳐보였을 대한민국의 미래를 못 보게 된 것이 정말 아쉽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