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본질 잃은 인사청문회

입력 2013-03-06 20:40


“도대체 왜들 저러는 거야!!!?” 정치학자 최준영 교수와 조진만 교수는 ‘견제와 균형-인사청문회의 현재와 미래를 말하다’라는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불쑥 터져 나온 이 한마디였다고 말했다. 이 말이 인사 청문회를 볼 때마다 반복되자, 저급 블랙코미디 같은 인사 청문회가 왜 일어나고 있는지를 연구할 필요를 느꼈다고 했다.

인사 청문회는 국회가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권을 견제하고 이를 통해 보다 나은 고위공직자를 임명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국회가 눈을 부릅뜨고 인사 청문회를 하게 되면 우선 대통령이 인사결정을 신중하게 할 수 밖에 없다. 보다 나은 인물을 고위공직자 후보로 내정하려 할 것이다. 대통령이 적절치 못한 인물을 내정하면 국회가 검증과정에서 탈락시켜 국정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다. 까다로운 청문회를 통과한 사람들은 정당성을 부여 받아 부처를 이끌어가는 데 힘을 얻을 수 있다. 검증과정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과 일반 국민들이 참고인이나 증인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어 ‘참여 민주주의의 실현’도 가능하다. 청문회 과정에서 국정을 담당할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소상하게 파악할 수 있어 국민들의 알 권리도 충족시켜주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 인사 청문회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다. 두 교수가 찾아본 인사청문회에 대한 보도들은 ‘죄송 청문회’ ‘사과 청문회’ ‘모르쇠 청문회’, ‘막말 청문회’, ‘국민의 혈압만 높이는 청문회’ 등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국립대학교 한 교수는 “고위공직자로서의 정책수행능력과 철학, 도덕성검증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이지만 대중적 관심은 능력과 정책수행능력보다는 사적 생활만 들춰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왜 인사 청문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까. 두 교수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취지는 허상에 불과하고 인사 청문회 과정을 시작부터 끝까지 지배하는 요인은 여야의 정파적 이해관계라고 결론지었다. 여당은 대통령이 내정한 고위공직 후보자를 무조건 방어하고, 야당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야공여방(野攻與防)’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사 청문회의 기원은 1215년 제정된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이다. 여기에 실린 “당사자는 청문의 기회를 부여받지 아니하고는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에 근거해 사법적 청문제도가 의회의 청문제도로 발전됐다. 영국에서 시작됐지만 청문회는 미국에서 더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다. 1787년 연방헌법을 제정할 때 연방정부 공직자에 대한 임명권을 대통령과 각 주 정부를 대표하는 상원 가운데 어느 곳에 줘야 할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지명하되 상원이 인준하는 절충안이 채택돼 연방헌법 제2조 제2항에 명시됐다. 정부와 의회 간 견제와 균형을 적절히 조화시킨 것이다.

이 제도를 200여년간 시행해온 곳답게 미국 인사 청문회는 치밀하게 진행된다. 고위공직자 내정자의 병역, 의료, 납세, 과거 경력, 친인척, 학창생활, 마약사용여부는 물론 성품과 주변의 평판, 어떤 친구를 두고 있는지, 특정 사안에 대해 편견이 없는지도 검증된다. 이런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쳐 내정된 공직자들은 청문회에서는 정책분야에 대한 능력만 집중 점검된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 내정자에 대한 미 의회 청문회가 50일간 진행됐지만 사적인 비리, 의혹 등에 대한 논란은 없었다. 반면 우리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신상털기’ 수준의 비리 의혹들이 쏟아져 정작 정책수행능력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있다. 고위공직자의 도덕성 점검은 중요하다. 하지만 고위공직자들이 정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전략과 능력을 지녔느냐 여부 검증은 더 중요하다. 우여곡절 끝에 8일 김병관 국방장관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가 열린다. 취지에 충실한 청문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