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화약고 이태원

입력 2013-03-06 20:38

가수 싸이의 노래 따라 강남 갔더니 별 볼 일 없더라는 외국인의 반응을 심심찮게 접한다. 제목에 드러난 장소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낮에는 따사롭다가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나 ‘낮에는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다가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버리는 사나이’는 도대체 어디 있나? 가사는 욕망의 비린내가 묻어있는 밤안개나 다름없다.

서울의 매력은 강북이다. 강남의 청담동이나 신사동 가로수길, 서래마을, 압구정이 나름의 세련된 풍속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서구 문화의 축소판이자 변형이다. 그에 비해 북촌과 서촌으로 이어지는 반가의 흔적, 인사동과 삼청동이 보여주는 전통의 향기, 저잣거리 명동, 젊음의 열기를 뿜어내는 신촌과 홍대앞이 살아있는 서울이다.

강남과 강북 사이에 낀 이태원은 중간지대의 매력을 지녔다. 이태원로를 중심으로 지하철 이태원역∼한강진역 구간의 골목을 돌아보면 박람회장에 온 기분이다. 13세기 고려시대에 몽골군이 진주한 이래 청나라와 일본, 미국으로 주인공이 바뀌면서 다문화 지대로 자리 잡았고, 지금은 국적, 종교, 성, 계층이 만나는 초국가적 모습을 보인다.

결정적 계기는 1976년에 건립된 이슬람성원이다. 정부가 에너지 위기 이후 중동 산유국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외교타운인 이곳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터키를 비롯한 이슬람 음식점이 문을 열기 시작해 일정한 종교적 블록이 형성됐다. 이어 1990년을 전후로 이탈리아, 프랑스, 인도 전문식당이 들어섰고, 근래에는 그리스, 벨기에 음식도 가세했다.

장소의 영역화는 집단 간 경합을 유발한다. 여기에 자본과 권력, 국민감정이 뒤섞이면 순식간에 갈등의 현장이 된다. 자칫 문명 간 충돌로 확산될 소지도 있다. 해법은 ‘문화적 소통’이다. 서로 상대방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고 불필요한 간섭을 줄이는 것이다. 음식이나 풍속을 이데올로기의 대상이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으로 바라보면 된다.

최근 이태원에서 발생한 미군의 난동은 혈기방장한 외국 젊은이들의 한바탕 소란으로 보아 넘기기에는 사안이 심각하다. 달라진 이태원의 위상을 미군들만 모르는 것 같아 딱하기도 하다. 개성 만점의 다국적 공간이면서 순식간에 화약고가 될 수 있는 이태원. 이번 사건은 세계 문화가 만나고 소비하는 이곳을 세련되게 관리해야 하는 숙제를 던져주었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