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호철] 디지털 수몰과 잊혀질 권리

입력 2013-03-06 20:19


최근 인터넷 공간이 시끌시끌하다. 한편에서는 나우누리 및 프리챌의 서비스 중단과 맞물려 ‘인터넷 추억’을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과 관련된 인터넷 기록을 지우는 문제가 논란을 빚고 있다.

유선전화를 통해 검정이나 푸른색 화면에 문자정보로 소식을 전하던 PC통신은 당시만 해도 ‘신세계’였다. 지난 1월 서비스를 중단한 ‘나우누리’는 1990년대 천리안, 하이텔 등과 함께 PC통신의 대명사로 통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면서 사양길에 접어들어 잇따라 이용자들에게 작별을 고하게 됐다. 지난달 18일에는 나우누리 다음 세대이자 인터넷 커뮤니티인 ‘프리챌’도 문을 닫았다. 1999년부터 서비스를 해왔고 약 110만개의 커뮤니티를 갖고 있지만 계속된 적자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하게 됐다.

인터넷 자료 백업 의무화 필요

사정이 이렇게 되자 가상공간에 자신만의 추억과 기억을 대부분 저장해둔 30·40대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나우누리 회원들은 ‘나우누리 살리기 위원회’를 결성하고 “나우누리의 게시판 등에 쌓아온 저작물을 지켜야 한다”며 법원에 나우누리 서비스 종료를 금지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나아가 나우누리를 인수, 별도의 법인을 설치하는 방안까지 계획하는 등 ‘응답하라! 나우누리’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 공간을 제공하던 회사가 갑자기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종료하는 경우 데이터를 보호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약관에 의해 서비스를 제공하던 기업은 사전에 서비스 종료 사실을 알릴 뿐 사용자의 자료를 보관해주거나 백업할 의무는 없어 피해는 이용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의 경우엔 ‘디지털 유산’도 논란이다. 개인이 사망한 이후 인터넷에 남아 있는 신상정보와 사진, 글, 영상 같은 개인 데이터는 특별한 규정이 없어 국가·사례별로 처리 방식이 다르다. 국내에서 화제가 된 것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으로 장병들이 숨지면서 이들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이메일에 대해 유족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유족들의 요청은 거절됐고 이후 유명인의 자살이나 사망 이슈가 번질 때마다 디지털 유산 관리는 이슈가 됐다.

또 다른 문제는 ‘잊힐 권리 보장’이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지만 과거 무심결에 한 행동이나 사진, 자료 등으로 시간이 지난 뒤 곤경을 겪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인터넷에서 ‘신상털기’가 보편화되면서 이 같은 ‘주홍글씨’는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얼마 전 한 대학생의 하소연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과거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현재의 여자친구와 헤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는 사람들의 블로그 등에는 삭제를 요청했지만 어디에 얼마나 퍼져 있는지 알지도 못해 속수무책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개인정보 삭제요청 허용돼야

이런 폐해 때문일까.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개인 정보나 저작물을 자신이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됐다. 인터넷에 게시물을 올린 사람이 온라인서비스 업체에 자신의 저작물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이를 요청받은 업체는 확인 절차를 거쳐 즉시 삭제를 이행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두고 트위터 등 SNS나 인터넷 등에서는 찬반양론이 뜨겁다.

‘기억을 보존할 권리’와 ‘잊힐 권리’ 모두 중요하다. 보존해야 할 정보는 사라지는 반면, 꼭꼭 숨겨둬야 할 정보가 튀어나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수몰과 잊힐 권리는 상반된 가치 개념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인 면에서는 근원을 같이할지도 모른다. 디지털 정보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이 마련돼야 할 듯싶다.

남호철 디지털뉴스부장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