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 인생역정… 쿠데타 실패·민중 영웅 등장·대통령 4選
입력 2013-03-06 20:03
“우리는 지금 정치 무기력증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적 비아그라가 필요합니다.”
이런 직설적인 언변에도 높은 지지율로 네 차례나 대통령에 당선된 남자가 있을까.
5일(현지시간) 별세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민중적 화술과 카리스마적 통치로 14년간 장기 집권한 남미 좌파전선의 수장이었다. 비아그라 발언은 2006년 12월 남미국가공동체 정상회담에서 남미연합 구성에 조바심을 내며 던진 말이다.
‘독재자인가? 빈민들의 대통령인가?’ 양극단으로 평가가 나뉘는 차베스의 가장 큰 정치적 기반은 대중의 지지였다. 차베스는 민중과 같은 부류라는 느낌을 주며 대화하듯 연설하기를 즐겨했고, 그가 진행하는 주말 라디오 프로그램은 국민에게 독특한 즐거움을 줬다.
군인이었던 차베스는 1980년대 사회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개혁실패와 경제위축, 부패 속에서 민중 운동이 확산되던 시기였다. 젊은 장교였던 차베스는 82년 민중수호 및 부패척결을 기치로 볼리바르주의혁명운동을 결성했고 좌파 정당과 접촉하며 정치 기반을 쌓았다. 92년 군사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해 투옥됐다.
사면된 차베스는 98년, 44세 최연소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경제적 계층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에 그가 영웅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차베스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멈추는 대신 에너지산업을 국유화하고, 헌법을 개정해 정부의 시장 개입을 확대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재정이 넉넉해지자 복지정책도 확대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위주의 국제 체제에 참여하지 않고, 중국 쿠바 리비아 이라크 이란 등 미국 영향력 확대를 반대하는 외교동맹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고립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대내적으로는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라는 비난이 제기됐다.
위기도 끊이지 않았다. 2002년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과잉 진압 과정에서 시민 20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 군대 내 우파 진영은 차베스에게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러나 3일 만에 차베스는 권력을 탈환했다. 2011년 암 투병으로 쿠바로 건너간 그는 이듬해 완전히 회복했다고 발표했고 2012년 10월 4선에 성공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암만큼은 차베스도 정복할 수 없는 시련의 산이었다. 다시 치료차 쿠바로 떠난 그는 최근 새로운 감염 증세로 호흡 기능이 악화돼 결국 5일 오후 4시25분 사망했다. 하루 40잔씩 커피를 마시는 극단적 취향만큼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차베스 지지자들은 사망 당일 수도 카라카스 시내로 뛰쳐나와 “우리가 차베스다! 차베스는 살아 있다!”고 외쳤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