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일밤-아빠! 어디 가?’ 김유곤 PD “예능의 긴장감·웃음 없이도 진심을 전하니까 통하네요”

입력 2013-03-06 18:21 수정 2013-03-06 18:22


아빠와 아이의 오지 여행기를 담아내는 MBC TV 예능 프로그램 ‘일밤-아빠! 어디 가?’의 내용은 단출하기 그지없다. 예컨대 지난 3일 방송분을 보자. 총 방영시간은 1시간20분. 제작진은 그런데 이 중 50분을 아빠와 아이가 저녁밥을 차려먹고 잠자리에 누워 대화 나누는 모습을 담아내는 데만 할애한다.

나머지 30분 역시 자극적인 설정이나 연출은 개입되지 않는다. 다음 날 기상한 아빠는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은 아빠가 요리한 음식을 마을 주민들에게 배달한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이 벌어지는 일요일 저녁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보기엔 단조롭기 짝이 없는 구성이다.

하지만 ‘아빠! 어디 가?’는 요즘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김민국(9) 윤후(7) 성준(7) 이준수(6) 송지아(6) 등 어린이 출연자 다섯 명이 빚어내는 ‘동심(童心)의 힘’에 이끌려 매주 TV 앞에 모여든다. 아이들 다섯 명은 ‘국민 아들’ ‘국민 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스타가 됐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던 아빠들 역시 이젠 자신의 이름이 아닌 ‘○○의 아빠’로 불린다. 지난 3일 방송분 시청률은 13.1%(닐슨코리아 기준)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과연 ‘아빠! 어디 가?’의 인기는 어디까지 치솟을 것이며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까. 5일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 MBC 일산드림센터에서 이 프로그램 수장인 김유곤(40) PD를 만났다.

-‘아빠! 어디 가?’의 인기가 대단하다.

“그동안 ‘일밤’에 완성도 떨어지는 프로그램이 제법 많았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기대감 ‘제로’인 프로그램이었을 거다. (어린이가 출연하는 SBS 예능 프로그램인) ‘붕어빵 짝퉁’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다. 그랬던 만큼 시청률은 크게 기대 안 했다. 7∼8% 수준만 됐으면, 5% 밑으로 떨어지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프로그램의 어떤 매력이 어필했다고 보나.

“지금의 오락 프로그램, 특히 주말 예능은 스케일이 크고 다이내믹하다.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다. 너무 밋밋해서 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출연자 간의 긴장도,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몸 개그’도 없다. 대신 진심을 전한다. 요리로 따지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백한 음식이다. 아빠와 아이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디테일을 담아내는 것도 특징이다. 가령 아이와 놀아주는 법을 모르는 아빠가 자녀와 한 공간에 있을 때 생기는 어색한 공기는 그 어떤 연출가도 만들 수 없다.”

-첫 녹화를 마치고 제작진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았다고 들었다.

“어려운 점이 많았다. 우선 MC가 없어 (방송의 흐름을) 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출연자들을 한 자리에 모으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모이라고 해도 아이들은 닭 구경하러 가고(웃음)…. 녹화도 (아빠와 아이들이 다섯 집으로 흩어지는 만큼) 따로따로 진행되니 전체 그림이 가늠이 안 됐다. 방송 분량 80분을 다 채울 수 있을지 걱정했을 정도다.”

-그래도 프로그램의 성공을 예상한 포인트가 있었을 텐데.

“첫 방송에 보면 김성주(41)씨가 아궁이에 불을 떼다 아들 민국이 얘기를 하면서 ‘민국이는 결핍이라는 걸 모르고 자랐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사실 방송을 염두에 두고 한 얘기가 아니다. 그냥 나랑 나눈 대화의 일부였다. 편집을 하면서 그 부분을 보는데 ‘아, 이 프로그램이 진심을 담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들 캐릭터와 아이들 성격이 제각각이다. 섭외하면서 가장 고려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보다 다른 스타일의 아빠들을 모으고 싶었다. 가장 공을 들인 건 성동일(45)씨다. 성씨는 아빠 없이 자란 개인사가 있는 사람이고, 가부장적인 아빠다. 꼭 섭외하고 싶었다. 반면 아이들 캐릭터는 윤후 빼고는 별로 고민 안 했다. 윤후는 2011년 ‘일밤-나는 가수다’ PD를 할 때 그룹 바이브 류재현(33)씨가 ‘(같은 팀 멤버) 윤민수의 아들이 물건이다’라고 말한 걸 기억해두고 있었다.”

-인기가 많아지면서 아이들이 상처 받는 일이 생기진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시청자들한테 ‘방송이 아이들 이용해먹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진 않다. 아이들에게 지금이 훗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인기가 많아지면서 걱정되는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아이들이 ‘아이돌’이 돼가고 있다. 사랑과 격려는 좋지만 지나친 관심은 지양해주셨으면 좋겠다.”

-출연자 중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는 윤후다. 지아와의 ‘러브 라인’에도 관심이 가는데.

“윤후는 지아 외에 다른 아이들도 많이 챙기는 성격이다. 배려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친다. 요즘엔 지아도 윤후에게 조금씩 마음이 가기 시작한 것 같다(웃음).”

고양=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