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넘어 함께하는 우리로 (10)] 여성 피해자 행동에 문제?… 성차별 의식이 원인

입력 2013-03-06 17:38


여성 피해자 행동에 문제?… 성차별 의식이 원인

“원 애가 모르는 아저씨 차를 함부로 타고 그래? 차 태워준다고 해도 안 탔어야지.” “배가 고파도 그렇지. 어떻게 남의 집 냉장고 문까지 열고….”

지난해 경남 통영의 초등생 성폭력 살해 사건 언론 보도 이후 일부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다. 이는 성폭력 사건의 책임이 피해자에게도 상당 부분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왜곡된 의식의 단면이다.

피해 어린이가 살았던 마을은 주민들이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로, 이웃집에서 간식이나 저녁을 먹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또 피해자는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의 직장관계로 노모에게 맡겨진 상태였다. 같은 동네에 사는 가해자 김점덕은 전과 9범의 성폭력 전력 때문에 보호관찰 명령이 내려진 상황이었고 포르노중독자였다. 그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등교하는 피해 어린이를 보고 성적 충동을 느껴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언론과 경찰은 우범자 관리시스템의 허점이나 보호관찰 명령의 소홀을 지적하는 한편 피해자에게도 다소 문제가 있었다는 피해자 유발론적 시각도 드러냈다.

통영YWCA 성폭력상담소 김유은혜 소장은 “이 사건과 지적 장애인 모녀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통영Y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예방교육의 중점적 대상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어린이 대상의 예방교육은 피해 상황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아동성폭력의 가해자인 성인 남성 대상의 예방교육으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것이죠.”

성폭력 사건에 있어 피해자 치유프로그램이나 여성과 어린이 대상으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보다는 성인 대상의 예방교육과 성 고정관념의 변화 등의 의식 교육이 중요함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나 남성위주 사회 전체의 성인식의 전환이다.

통영시민들은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임을 인식하고 그 심각성을 인지하게 됐다. 결혼이주여성가족이 많고 가부장적인 성 고정관념이 강한 통영시에서 가장 큰 섬인 한산도(한산면)의 예방교육은 큰 성과가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는 그런 교육 필요 없다. 성교육은 사건이 일어난 마을에서나 하라. 그놈이나 죽여라”며 거부했으나 거듭 찾아가서 교육을 하겠다고 하자 주민교육을 허락했다.

15개 읍·면·동 지역의 통장·동장 및 단체장의 ‘성인지력 향상교육’은 성범죄를 보는 시각을 바꿔 김점덕 사건에서와 같이 가해자에게 성폭력 사건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아동성폭력은 피해자의 성폭력 피해 예방도 중요하지만 어른들이 아동을 보호하고 안전한 돌봄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욱 우선돼야 할 것임을 알게 됐다. 특히 피해 아동의 입장에서 성폭력을 설명해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고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보도와 처벌, 성폭력범죄 예방 대책이 시급함을 깨닫게 됐다.

김 소장은 “통영은 섬 지역이 많아 가정폭력과 성폭력이 다른 지역보다 많으며, 동네 주민에 의해 윤간을 당해도 가해자가 친척간이거나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마을 주민이라는 이유로 덮어지고 있는 실정인데, 이를 중점적으로 교육해 숨겨진 성폭력을 드러내게 됐다”고 말한다.

3개월간의 통영시민 교육 이후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신고하는 일이 더 많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안면문화에 익숙한 농어촌 지역의 성범죄가 집단적인 폭력임을 인식했고, 약자인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폭력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공유했다.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은 본질적으로 성차별적인 사회구조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그 근본은 남성이라는 이름의 힘의 과시와 통제에 있다.

이주영(한국YWCA연합회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