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뭉치 이 녀석, 목소리가 심상찮다… 한석규·이제훈 환상의 앙상블 ‘파파로티’
입력 2013-03-06 17:32
폭력 조직에 몸담으면서 성악을 꿈꾸는 건달 제자와 한때 잘나가던 성악가였다가 시골학교로 낙향한 음악 교사. 등장인물의 배경 설정이 다소 진부하고 스토리도 뻔하지만 누가 배역을 맡느냐에 따라 영화는 180도 달라질 것이다. 14일 개봉하는 ‘파파로티’(감독 윤종찬)는 스승과 제자의 케케묵은 이야기를 웃음과 눈물이 버무려진 유쾌한 드라마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영화의 감동적인 변주는 주연 배우 한석규와 이제훈의 개성 넘치면서도 아름다운 앙상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주역을 따낼 정도로 촉망받았으나 성대결절 때문에 무대에서 내려온 상진(한석규)은 경북 김천예고에서 음악 교사로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상진에게 어느 날, 성악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장호(이제훈)가 나타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삐걱거린다. 가는 곳마다 말썽을 부려 전학을 온 건달 장호는 학교에 올 때에도 부하들을 끌고 다니며 위화감을 조성한다. 그럼에도 교장(오달수)은 상진에게 학교 실적을 내야 한다며 성악 천재 장호를 맡아 콩쿠르에 나가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상진은 깡패를 제자로 키울 수는 없다며 장호의 실력을 테스트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다 교장의 강압으로 상진은 장호의 노래를 처음 듣게 되고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다. 게다가 악보도 못 보는 장호가 밤새도록 학교에 남아 연습하는 것을 보고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두 사람은 콩쿠르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장호의 실력도 점점 늘어간다. 그러나 폭력 조직은 장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살벌한 환경 속에서 장호는 콩쿠르를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의 이름을 패러디한 ‘파파로티’는 사회 주변부 인물의 인생역전 성공담이라는 익숙한 플롯을 차용했다. 2010년 SBS ‘스타킹’에 ‘고딩 파바로티’로 출연해 놀라운 가창력을 뽐낸 김호중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교내 폭력서클에 가입할 정도로 문제아였던 김군은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마음을 다잡았고, TV 출연 이후 스타덤에 올라 독일 유학을 떠났다.
영화는 상투적인 에피소드에 독특한 양념을 가미해 고유의 맛을 살려냈다. 재미를 살린 것은 탁월한 캐릭터 연출과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 덕분이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영화 ‘베를린’에서 존재감을 확인시킨 한석규(49)는 까칠한 스승으로 다시 한번 진가를 드러낸다. 이제훈(29)은 군 입대 직전 찍은 이 작품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듯하다. 그의 열정과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화에서 들려주는 클래식은 대중적으로 친숙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과 ‘투란도트’ 중 ‘네순 도르마(공주는 잠 못 이루고)’ 등이다. 목소리 대역은 전문 테너가 맡았다. 립싱크가 자연스럽지 못한 한계는 있지만 한석규와 이제훈이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을 실제로 함께 부르는 장면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애틋한 하모니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15세 이상 관람가.
지난달 27일 시사회 후 가진 간담회에서 한석규는 “이제훈은 배우로서 진지하고 진솔한 면이 좋았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솔함을 잘 보여주자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가 20번째 출연작인 그는 “많은 장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왔지만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잘 모른다”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계속 연기를 하면서 인물들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소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한석규는 최근 출연한 SBS TV ‘힐링캠프’에서 자신의 연기관을 얘기하며 “내 연기가 늘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배우 심은하와 함께한 ‘8월의 크리스마스’(1998)를 꼽은 뒤 2001년 은퇴한 심은하에 대해 “기회가 되면 다시 연기해 보고 싶은 동료”라고 추억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