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성삼 (15) “한국어 배우자” 외국인 근로자들 전국서 몰려
입력 2013-03-06 17:51
외국인 근로자 학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한 학생들이 16개국 200여명에 달했다. 당시만 해도 주 6일 근무였는데, 하루 쉬는 일요일을 반납하고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강의를 해주겠다고 지원한 교수들의 이력서가 87통이나 접수되었다. 박노자 교수를 비롯한 8명을 일요대학 교수로 선정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이들이 강의료 한 푼 받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돈을 써가며 강의를 했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교재도 직접 만들었다는 점이다.
교수진의 열정과 학생들의 참여가 어우러져 외국인근로자 일요대학은 1997년 5월 출범했다. 멀리 대구에서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새벽기차를 타고 올라왔고, 토요일 야근으로 밤샘을 한 뒤 학교에 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학생 수가 늘었다. 건국대학교 대학병원의 전신인 민중병원은 외국인근로자들의 무료 건강검진에 참여했다. 당시 파업을 하던 병원노조가 일요일을 반납하고 이들의 건강검진을 위해 하루 종일 의료봉사를 해주기도 했다.
외국인근로자 일요대학은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었지만 그중 ‘외국인 근로자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많은 사회단체들이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 가정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하지만 당시엔 외국인 근로자를 한 곳에 모이게 하는 일이 흔치 않았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 심시위원으로 참여한 선생님들이 원고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코리언 드림을 안고 힘겹게 찾아온 그네들이 한국에서 경험한 사연이 대부분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그리워하는 사연, 한국인 고용주에게 학대받는 사연, 피부색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받는 모멸감 등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말하기 대회 원고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10명의 원고가 최종 심사를 통과했다.
그런데 최종 심사를 통과한 방글라데시 출신의 샤하눌 이슬람이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가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도중 단속 나온 법무부 직원들에게 체포된 것이다. 며칠째 수감된 그를 면회 갔을 때 그는 “선생님 제발 저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 안 있으면 제가 추방된대요”라고 말했다. 면회를 마치고 교도소 관계자와 면담을 했다. 수감된 우리 학생이 이번 토요일에 열리는 한국어 말하기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특별조치를 해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대답만 들었다.
1997년 11월 30일. 외국인근로자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국내 방송사와 신문사의 취재진들이 모였다. 최종 본선에 나선 외국인근로자들은 주어진 시간 동안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행사를 마무리하는 나의 스피치 시간이 됐다.
“오늘 저는 말하기 대회를 앞두고 불법체류자로 체포돼 의정부교도소에 구금된 여러분의 친구 샤하눌 이슬람이 제출했던 원고를 대신 읽고자 합니다.”
‘저는 어려운 일 더러운 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6개월째 월급도 못 받고…봉급을 달라고 하면 사장님은 ‘너희는 불법체류자야 알아?’ 하며 소리치고 우리 모두 같은 아시아 사람인데 마음에는 국경이 없는 것 아닌가요’
이번 말하기 대회의 우승을 꿈꾸며 그가 제출한 원고를 대신 읽어 내려가는 동안 장내는 숙연해졌다. 이곳저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누가 시작했는지 빈 과자 상자를 돌리며 샤하눌 이슬람을 위한 모금이 시작됐다. 그날 행사는 방송과 신문에 비중 있게 보도되었다. 언론 보도를 접한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서 항의전화가 왔다. 국가기관에서는 불법 체류자들을 단속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대학이 불법 체류자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