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가게 집사람 일 도와야지요”… 김능환 중앙선관위원장 33년 공직 마감
입력 2013-03-05 19:48
김능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5일 경기도 과천 선관위 청사에서 퇴임식을 갖고 33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 하마평에 올랐으나 “대법관 출신이 행정부 공직을 맡는 건 적절치 않다”며 고사했다. 이 과정에서 대법관 퇴임 이후 부인이 채소가게와 편의점을 열어 생활비를 벌었던 일, 선관위 직원의 변호사 선임비용 800만원을 남몰래 자비로 지원한 일 등 검소한 생활상과 미담이 알려지면서 ‘청백리(淸白吏)’로 주목받았다.
김 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청백리’란 호칭에 “그거 참 별거 아닌데. 공무원이 다 이렇게 사는 거죠”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이후 계획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집사람이 일을 하고 있으니 물건 사러 갈 때 내가 운전하고 모시고 다니며 열심히 도와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는 1975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80년 9월 판사로 임관했다. 직업 없이 사는 시간을 겪어보지 못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다른 공직을 맡길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건 아니다. 공직은 이걸로 끝이다”라며 “정치는 저랑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모범이 되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나누고, 또 법조인의 자존심 같은 것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일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며 “지금 딱히 한 방향으로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이 퇴직 후 대형 로펌에 들어가 억대 연봉을 받는 전관예우 논란과 관련해선 “법조계에 평생 몸담고 있던 사람으로 최근 언론에서 얘기되는 것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공직 생활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이 없느냐고 묻자 “판사로서도 그렇고,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도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이상할 것”이라며 지난해 대선 직후 재검표 사태를 언급했다. 그는 “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한다고 했는데 막상 논란이 되자 미진한 게 더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난 1월 개표 시연도 하면서 의혹이 많이 해소된 것 같이 느껴져서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퇴임식에서 직원 200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청사 밖에 세워 둔 자신의 쏘나타 차량을 직접 운전해 선관위를 떠났다. 김 위원장이 “세금 들여 공로패를 만들지 말라”고 주문하는 바람에 공로패 대신 직원들은 작은 꽃다발만 전달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