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성삼 (14) 교수부임 첫 사업으로 ‘외국인 근로자 일요대학’

입력 2013-03-05 21:34


하나님께서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가 3만5000피트 상공에서 드린 기도를 들어 주셨다. 1987년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교육프로그램평가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오랫동안 기도해왔던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건국대학교 교수가 되고 몇 년 뒤 첫 보직으로 평생교육원장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동두천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어느 정류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차에 오르며 어눌한 우리말로 물었다. “미아리까지 가려고 하는데 요금이 얼마인가요?” 피부색이 검고 남루한 작업복을 입은 외국인 근로자를 아래위로 훑어보던 버스 기사는 다른 승객들이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욕을 하며 뒷좌석으로 가라고 했다. 저들도 요금을 내는 승객인데….

그 순간 시카고에서 시내버스를 타던 기억이 났다. 미국에 도착해 시차 적응도 제대로 되지 않던 첫 토요일, 나는 시카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그때 나 역시 미국인 버스 기사에게 다운타운에 있는 시어스 타워까지 가는 데 요금이 얼마인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다. 미국인 버스기사는 나의 어눌한 영어와 다소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보며 나를 안심 시켰다. 자기 뒷좌석이 비어 있으니 앉아서 창밖 구경을 하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때 버스 기사의 친절함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다음날 오후 총장실 문을 두드렸다.

“총장님. 제가 일요일이면 건국대학 주변 뚝섬유원지를 지나 교회에 가는데, 외국인 근로자들이 뚝섬유원지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공장이 쉬는 일요일에 할 일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지요. 일요일에 굳게 잠긴 대학 강의실 문을 열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모아 가르치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제가 그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총장님께 일요일마다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한국어와 역사 문화를 가르치고 가끔 문화 탐방을 떠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억울한 일을 당한 외국인들을 위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교과서를 만들어 무료로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점심은 대학 구내식당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대학병원을 설득해 무료진료 프로그램도 접목하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의 열정에 찬 이야기를 듣던 윤형섭 총장님이 물었다. “오 원장 좋은 생각이긴 한데 거기 들어가는 예산을 어떻게 조달하지요? 더구나 매주 일요일 그들을 가르칠 교수진은 또 어떻게 구성할 수 있겠어요?”

나는 잠시의 망설임 없이 말했다. “총장님 저는 이제껏 사람들이 감동하고 하늘이 감동하는 일이라면 필요한 돈은 하늘이 내린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를 믿고 맡겨주세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윤 총장님이 거절할 분이 아님을 잘 알기에 소신대로 이야기한 것이지만, 그날 ‘하늘이 감동하는 일은 하늘이 돈을 내린다’는 말은 내가 한 이야기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하나님이 나의 입을 빌려 하신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건국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외국인 근로자 일요대학’이다. 나의 기대처럼 하늘의 응답이 오기 시작한 것일까. 계획이 발표되자 코리아헤럴드 외국인 여기자가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사가 실린 뒤에는 기사를 읽은 외국인 한 분이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블라디미르 타호노프(박노자) 교수였다.

“원장님! 저는 박노자란 사람인데 러시아 출신이고 현재 경희대학교 객원교수로 와 있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통해 소식을 알았습니다. 감동적인 프로그램인데 저도 도와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한국 역사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