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정치적 할리우드 액션

입력 2013-03-05 18:20

운동선수가 반칙 판정을 유도하기 위해 심판을 현혹하는 속임수를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한다. 1988년 프랑스월드컵 때 할리우드 액션이 잦아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 처벌을 강화했다.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 대표팀과 맞붙은 이탈리아 대표팀 프란체스코 토티가 할리우드 액션으로 퇴장당한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는 나름대로 연기력을 발휘했지만 심판의 예리한 눈썰미에 딱 걸리고 말았다.

우리에게 토티보다 더 유명한 선수는 미국 쇼트트랙 국가대표였던 안톤 오노. 그는 2002년 미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m에서 할리우드 액션을 써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한 김동성을 실격시킨 장본인이다. 오노는 “김동성이 나를 최고의 선수로 인정했다”는 낭설을 자서전에 남겨 김동성의 부아를 돋웠다.

지난달 열린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체험행사에서 김동성과 오노가 올스타로 만났다. 빙상경기장에서 후배 성시백을 뒤따라가던 김동성이 양손을 들어올리며 오노 액션을 재현하자 관중이 일제히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를 지켜본 오노도 웃었다고 한다. 오노는 최근에도 우리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대한체육회가 페이스북에 한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의 인형 사진을 올리면서 누워 있는 선수를 알아맞히는 문제를 냈기 때문이다.

스포츠 분야에만 할리우드 액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험금을 노리고 차 사고를 유발하는 범죄자들도 ‘오노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할리우드 액션이 성공하면 김동성처럼 피해자가 생긴다. 이들 범죄자가 부당하게 보험금을 탄 만큼 보험사와 보험 가입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느닷없이 정치권에도 할리우드 액션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민주통합당 박용진 대변인이 4일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박 대변인은 “자신의 자격 미달을 야당 탓으로 돌리려는 할리우드 액션에 혀가 내둘러질 지경”이라며 “국회까지 찾아와 남 탓의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은 잘 짜여진 각본 냄새가 나는 정치적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둘러싼 청와대·여당과 야당의 무한 대치 때문에 사퇴한다고 했다. 엊그제까지 조국에 헌신하겠다고 공언한 그의 갑작스런 사퇴 결정 과정에 다소 경솔한 측면은 있다. 그런 면을 부각시켰다면 괜찮은 논평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진 사퇴로 이득 볼 게 없는 이에게 무작정 할리우드 액션을 들이댄 것은 ‘과장’된 표현 아닐까.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