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근미] 3월의 기쁨

입력 2013-03-05 18:16


20대 내내 애인 없이 맞는 12월보다 더 슬픈 달은 3월이었다. 원하는 외지 학교에 보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마 몰래 고등학교 입시를 치르지 않아 일찌감치 교복을 벗은 나. 각급 학교가 새 학기를 시작하고, 내가 떨어진 대학으로 신입생들이 몰려가는 3월이면 단기 우울증에 시달리곤 했다. 코를 질질 흘리던 동네 꼬마 녀석들까지 가슴팍에 수건을 달고 신나게 골목을 달려 내려갈 때면 세상에 나 혼자 팽개쳐진 기분이었다.

3월이면 새 울타리를 얻은 아이들을 피해 다니며 단과 학원에서 수강 과목 정하는 일로 소일했다. 사람들이 4월의 봄볕에 노곤해질 때쯤 우울증을 수습하고 별 수 없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했던 20대 내내 시간도 많고 돈도 부족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늘 허전했다. 학교가 수업을 파하는 오후에서야 문을 열어도 학습과외금지 조치로 아이들이 교습소로 몰려오던 시절이었다. 부산까지 원정 가서 머리를 다듬고 메이커 옷과 가방으로 둘둘 감은 채 울산 시내를 누벼도 상처받은 마음과 자격지심은 별반 해소되지 않았다.

의지가 그리 강한 것도, 공부에 엄청난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닌 내가 친구들이 결혼 막차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쓸 즈음 기어이 대학에 입학한 건 ‘3월의 신입생 대열’에 끼어 보려는 오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건너뛰고 거의 십 수 년 만에 신입생이 된 날의 두근거림을 잊을 수가 없다. 남의 옷을 입고 남의 동네에 온 양 주뼛거리는 나를 캠퍼스의 청신한 바람이 신비하게 감싸던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피어오른다.

요즘은 대학에 출강하면서 3월의 신선함을 맛본다. 그동안은 서울 시내에 있는 모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이번 학기는 경기도 소재 대학에 출강하게 되었다. 개강 첫날 첫 교시 수업하러 가는 날 스쿨버스 정류장을 못 찾아 헤매고, 스마트폰을 두고 오는 바람에 메모해둔 강의실이 기억나지 않아 허둥대면서도 즐겁기만 했다. 3월에만 겪을 수 있는 일이니까.

3월이면 어디선가 단기 우울증을 앓는 나 같은 이가 있을 듯해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이에게 내가 20대 내내 잔혹한 3월을 거친 이후 큰 기쁨과 만난 것을 귀띔해주고 싶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3월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이유는 충분하다. 가슴 설레며 새롭게 행진할 힘을 주는 출발점이니까.

이근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