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의 시편] 3·1운동과 교회

입력 2013-03-05 17:16


1919년 3·1운동 당시 교회는 매우 중요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기독교인은 절반에 해당되는 16명이었습니다. 천도교가 15명, 불교는 2명뿐이었습니다. 남강 이승훈 장로를 비롯하여 길선주 목사 등이 서명자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2000만명 정도. 그중 기독교 인구는 약 22만명으로서 국민의 1%가 조금 넘는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독교인들의 민족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현실참여정신은 매우 뜨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초기 교회는 한국 사회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3·1운동만이 아니라 교회는 근대화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학교와 병원의 대부분은 교회가 세웠습니다. 교육과 의료시설의 발전은 교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정도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지도자 역할을 하신 고당 조만식 선생은 필자가 섬기는 교회 장로(1922년 장립)이셨습니다. 암울한 역사 속에서 기독교는 세상을 책임졌고 시대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다 되가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위상은 어떤지요. 교인 수뿐 아니라 교회의 규모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영향력은 왜 이렇게 초라해지고 있는지, 또 왜 이렇게 부끄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위 안티크리스천이 많아져서, 그들이 고의적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하지만 왜 많은 안티들이 생기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의 기독교에 대한 비난과 부정적 이미지의 확산을 안티들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우리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는 것일 뿐 아니라 교회의 회복 가능성마저 잃는 것입니다.

수많은 안티들이 만들어지는 원인을 우리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의 긍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것에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자신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음에도 자녀들은 교회에 보내는 부모들이 많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못된 것은 가르치지 않으니 교회를 다니면 자녀가 착하게 살게 된다고 생각해 교회에 보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교회 다니는 부모조차 자녀를 교회에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에 교회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3·1운동 이후 교인들의 수가 많이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한국교회는 늘어나는 조짐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감소추세이거나 답보 상태에 있다는 통계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언제쯤 교회는 다시 그 생명력을 찾아 한국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부터 그 건강한 희망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행동하고 있습니다.

<산정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