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명호] 육사 출신과 집단 思考

입력 2013-03-04 18:43


1961년 4월 17일, 쿠바 망명자 1500여명으로 구성된 ‘2506 공격여단’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쿠바를 침공한다.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훈련시킨 용병들이다. 이들의 성공은 피그만(灣) 상륙까지만이었다. 상륙 사흘 만에 사망자만 115명 발생했다. 1113명은 생포됐다. 미 정부는 포로 교환을 위해 5300만 달러를 지급했다. 미국은 졸지에 국제적으로 비난과 조소거리가 됐다. 피그만 침공은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 중 가장 참담한 실패로 기록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나중에 “내가 왜 황당한 작전을 실행했을까”라고 후회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최종 결정자는 7명이다. 케네디 대통령을 비롯해 딘 러스크 국무장관,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 앨런 덜레스 CIA국장, 백악관 비서실장이었다.

모두 절친한 친구(로버트 케네디는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사이다. 대부분 하버드대를 나왔다. 워낙 친했던 이들은 동류의식으로 똘똘 뭉쳐 침공계획의 무모함을 짚어내지 못했다. 미국 최고의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전략가이자 우수한 두뇌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반대 시각으로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다.

정책 실패 초래할 위험성 커

미국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 교수는 1972년 무모한 피그만 침공을 ‘집단사고(Groupthink)’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분석했다. 제니스 교수는 집단사고를 ‘응집력 높은 집단의 사람들이 만장일치를 위해 노력하며, 다른 의견을 뒤엎으려 하는 상태’라고 규정했다. 비판적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폐해는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게 되며, 조직을 경솔하게 만든다.

2년을 활동한 미 상·하원 9·11 조사위원회는 2004년 최종 보고서에 ‘CIA 등 정보기관들의 집단사고로 테러를 예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주말에 박근혜 대통령은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을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군 안팎에서 원칙과 소신, 강직함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앞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김장수 전 국방장관, 국방장관 후보자로 김병관 전 한·미 연합사 부사령관이 내정됐다. 여기에 장관급으로 격상돼 앞으로 안보 관련 정보를 함께 다룰 박흥렬 경호실장도 임명됐다. 이들 모두 육군사관학교(25∼28기)를 같이 다닌 동년배급(1944∼1949년생)들이다.

6·25 이전에 태어나 5·16쿠데타가 일어난 뒤 60년 중반을 전후해 육사에 들어갔으며 7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 똑같은 군생활을 했다. 모두 대장 출신이다. 출신 배경과 살아온 환경이 같으니 생각이 비슷할 것이다. 이들이 기용할 각 기관의 주요 실무진도 생각이 비슷한 후배들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외교·통일팀과 엇박자 날 수도

물론 모두가 능력 있고 리더십이 출중하니 그 엄중한 자리까지 갔을 것이다. 비슷한 나이와 똑같은 교육, 비슷한 보직과 똑같은 군생활. 이런 동질감이 외교·안보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뜨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외교·통일 장관이 있으나 지금 인선으로 봐서는 안보가 최우선인 것 같다.

현재 동북아와 세계 정세는 안보만 별도로 생각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오히려 안보는 국제외교나 역학관계 조정의 한 수단이다. 북핵도 단순히 한반도 안보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현안이자 G2 세계 전략의 하부요소이다. 지금은 70년대 구호인 ‘총력안보’의 시절이 아니다. 집단사고가 아니라 전략적 유연성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하버드대 나온 수재들이 멍청해서 그렇게 참담한 실책을 한 게 아니다.

총리와 비서실장, 청와대와 정부 사정라인에 성균관대 법학과 출신 기용, 장관 인선이나 정부조직 개편안에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여권…. 박근혜 정부는 집단사고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김명호 편집국 부국장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