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아내 15년 수발 老의사의 순애보… 열넷 노인 봉양 ‘사랑의 집’으로 꽃피다

입력 2013-03-04 21:51


식물인간 상태의 아내를 15년간 헌신적으로 돌봐온 박재형(65·가천대 길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지그시 눈을 감고 감회에 젖었다. 1997년 부인 이희종(60)씨가 뇌종양 판정을 받으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린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시 히스기야 왕 같이 아내가 15년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교인들의 중보기도가 이어졌고요. 비록 아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제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참 인생인지 알려주었답니다.”

환부 절제를 최소화해 치료하는 ‘중재적 시술’의 권위자로 국내 심혈관 영상의학의 기초를 닦은 박 교수는 3일 경기도 양주 영파실버홈 사랑의집에서 “아내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려주었다”고 간증했다. 아내의 병실을 지키며 어려운 이웃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이제 아내를 돌보는 것 외에도 ‘더 큰 사랑’에 힘을 쏟고 있다. 부친 박용묵(1991년 작고) 목사가 20여년 시무한 서울 대길교회 부설 대길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를 맡은 것. 또 서울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를 공부한 그는 이곳 치매노인 등을 돌보는 ‘사랑의집’ 건립을 위해 자신이 갖고 있던 양주 땅 1980㎡을 선뜻 기증했다.

“연약한 사람들이 있다면 사회가 더 보듬어줘야 합니다. 무의미한 생명이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무의미한 생명이 있다면 그 의미를 찾아주는 사회가 돼야 할 것입니다. 내치거나 차별하지 말고 의미 있게 챙기면 의미가 생깁니다. 그렇게 의미를 찾아주는 것이 크리스천의 사명이자 국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의대 교수직에서 지난해 퇴임한 그는 현재 양주 사랑의집에서 아내와 14명의 노인들과 함께 살고 있다. 2008년부터 치매노인의 주치의로, 친구로, 때론 기타를 치며 찬양예배를 인도하는 찬양 강사로 숙식을 같이한다. 주일에는 서울 신길동 대길교회 시무장로로 봉사한다. 또 길병원 영상의학 신우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기도 한다.

그는 아내의 질병을 통해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평생 자신과 자식들을 위해 헌신해 온 아내. 그 아내에게 보답할 기회를 얻은 것으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

박 교수는 “뇌사상태가 되면 평균 생존기간이 보통 1년인데 아내의 여명이 오늘까지 계속돼 15년을 채웠다”고 감사해 했다.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심(사 42:3)이라고 생각한다”며 “하나님이 아내를 통해 ‘생명의 귀함’을 보여 주시는 모델로 삼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잠자는 듯한 아내의 모습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하나 둘씩 모두 내려놓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과 소유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소중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숨쉬는 이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아내의 호흡을 통해 삶의 축복으로 산소를 공급하시고 우리의 호흡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는 다음 달 14일 아내의 환갑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1남 1녀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이 지인을 초청한 가운데 재롱잔치를 열 계획이다.

그는 기자에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는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말씀을 전해 주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사랑이 가장 중요하니 여생도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건강 비결로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앞으로 사랑의집을 지역주민을 위한 선교복지센터로 만들 꿈을 갖고 있었다.

양주=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