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野 정면충돌] 주먹 쥐고 입술 깨물고… 격앙된 朴 대통령
입력 2013-03-04 23:03
취임 8일 만에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노여움이 서려 있었다. 평소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박 대통령이었지만 격앙된 어조로 주먹까지 불끈 쥐어 보였다.
박 대통령은 짙은 초록색 재킷에 회색 바지 차림으로 4일 오전 10시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표정은 어두웠지만 눈빛은 결연했고, 준비한 원고를 막힘없이 10분간 읽어 내려갔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송구스럽다”는 사과로 시작한 담화에는 구구절절 절박함과 단호함이 묻어났다. 박 대통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국정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하며 입술을 깨물었고,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로 감정이 격해졌다.
직제가 통과되지 않아 내정자 신분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불참했다. 청와대의 불만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단상 옆 의자에서 박 대통령을 기다린 허태열 비서실장, 박흥렬 경호실장과 9명의 수석비서관은 담화가 시작되자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봤다.
특히 박 대통령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가 앞으로 10년, 100년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시가 급하고 분초가 아까운 상황”이라며 정부조직 개편안의 진정성을 호소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면서 “과거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본질에서 벗어난 정치적 논쟁으로 이 문제를 묶어 놓으면 안 될 것”이라며 “시간을 늦추고 미루다가는 국제 경쟁력에서 뒤처진다”고 안타까워했다. 발언대를 손으로 짚어 ‘쿵’ 하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 발표 직후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이어진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차가운 낯빛으로 야당을 압박했다. 박 대통령은 “긴 실타래를 풀어보려 어제 여야 대표를 초청해 봤지만 그것도 결국 무산됐다”며 “대화로 모든 것을 풀어야 한다고 야당에서 연일 주장을 했는데 회동까지 거부하는 것은 대화를 통한 의견 접근보다는 본인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방송장악을 할 것이라는 가상의 생각으로 이 문제를 잡고 있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