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m내 브랜드 매장 6곳… 대기업, 화장품 골목도 점령

입력 2013-03-04 17:27


“화장품 장사가 잘 되냐고요? 말도 마세요. 이제는 기업들이 운영하는 화장품 브랜드 매장들이 골목까지 들어서기 시작하며 월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가족들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지요.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서울 봉천동 부근에서 작은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김준석(가명)씨는 동네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브랜드 매장이 연달아 들어서자 매출이 급감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동네 화장품 가게가 사라져 가고 있다. 대기업 빵집과 동네 빵집의 치열한 경쟁에 이어 화장품 가게도 신경전이 극도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김씨처럼 대기업이 운영하는 유명 브랜드에 손님을 내주고 가게를 문을 닫는 경우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동네 화장품 가게는 프랜차이즈 업체들에 자리를 내준 이후 전체 화장품 유통 시장에서 5% 이하로 급격히 줄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기자가 서울 낙성대역 부근에 있는 한 재래 시장에 들어서자 프랜차이즈 화장품 매장이 근거리에 50m 간격으로 빼곡히 들어섰다. 이니스프리, 토니모리, 에뛰드 등 4개의 매장이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안에도 프랜차이즈 매장은 2개가 더 있었다. 약 300m 골목 사이에 총 6개의 화장품 프랜차이즈 매장이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동네 화장품 가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작은 동네에 매장이 6개나 연달아 있다보니 경쟁도 치열하다. 연일 30∼50% 세일 행사를 하는 통에 동네 화장품 가게는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국내에 주요 대기업이 운영하는 브랜드는 점차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화장품 업계에서 1, 2위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이 운영하는 브랜드 매장 비율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아리따움은 전국에 1261개, 에뛰드 480개, 이니스프리 624개의 매장이 있다. 이 중 이니스프리는 직영 매장이 40%, 에뛰드는 45%에 달하며 나머지는 가맹점이다. 또한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은 전국의 총 매장수가 1030여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더페이스샵의 경우 직영 매장 비율이 약 50%에 달한다. 이들 업체 뿐 아니라 일부 브랜드매장들이 지하철에도 입점하며 영세상인들이 설 자리는 더욱 없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시장 경제 논리에 의해 재편되는 화장품 브랜드매장의 성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창업비용이 기본 10평을 기준으로 가맹비 1000만원, 초도매입비용 3000∼4000만원, 인테리어비 3000만원으로 약 7000∼80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내면서 영세업자들이 매장을 내는 것은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5일 동반성장위원회는 21차 본회의를 개최해 제과점업과 외식업 등 생계형 서비스업 총 16개 업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뿐만 아니라 대형마트나 백화점 내 입점하는 인스토어형 제과점의 ‘확장 자제 및 진입자제’를 권고했다. 그러나 화장품 매장에 대한 규제는 아직까지 없다.

화장품 브랜드 매장들이 동네 상권을 잠식한다는 지적에 대해 업계도 할 말은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화장품 매장을 내는 곳은 주요 핵심 상권들이기 때문에 동네 상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면서도 “다만 같은 브랜드 매장이 생기면 상권끼리 갈등이 생길 수 있어 자체적으로 조율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장윤형 쿠키건강 기자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