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페루 김명수 선교사] ③ 경찰 출신 아우구스또 목사
입력 2013-03-04 17:17
부족한 돈 벌고 전도하고… 택시핸들 잡은 페루 목사들
아우구스또 뿌엔떼(44·Augusto Puente) 목사님은 경찰 출신입니다.
건장한 체격에 절도 있는 말투와 자세를 보이지만 걸을 때면 다리를 접니다.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 정글 접경지역에서 근무할 때 공산 게릴라들과 벌인 전투에서 관통상을 입어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경찰직도 그만둬야 했습니다.
페루에는 아직도 모택동주의를 신봉하는 ‘빛나는 길’과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뚜빡 아마루’로 불리는 공산주의 게릴라 잔당이 남아 있습니다. ‘빛나는 길’이 한창 득세할 때는 수도 리마까지도 테러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1992년 지도자인 아비마엘 구스만이 체포된 데 이어 96년 뚜빡 아마루 게릴라들이 일본 대사관을 점거하고 세계 각국의 대사들까지 인질로 붙잡았을 때 페루 정부의 무력 진압작전으로 게릴라 대원 전원이 몰사하면서 페루의 공산주의 게릴라운동은 거의 해체되고 맙니다.
‘빛나는 길’ 등 공산주의 게릴라운동이 해체된 가장 큰 이유는 명확합니다. 외치는 이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삶은 오히려 더 어렵고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고, 나아가 그들 편에 서지 않는다며 양민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함으로 민심이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길’의 잔당들이 아직도 안데스와 아마존 정글에 남아 간혹 경찰서를 습격하기도 합니다. 요즘 페루 정부가 이 잔당을 소탕하려는 주된 이유는 이념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마약 조직과 연계돼 있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또 목사님은 이들과의 전투에서 다리를 잃은 대신 병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경찰을 퇴직하고 택시 운전을 하면서 열심히 전도하며 전심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갚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다가 덜컥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로 소명을 받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교인 총회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목사로 선출된 것입니다. 중남미의 독립교회들 중에는 교인 가운데 믿음 좋고, 생활력 있고, 언변이 좋으면 목사로 임명하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그렇게 목사가 된 분들은 교회를 개척하고 열심히 목회를 시작하는데, 외부 도움 없이도 성장해갑니다.
하지만 신학과 목회의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한계에 부닥치게 됩니다. 구원의 확신과 열정은 있지만 1년 52주 내내 구원과 회개만 설교해서는 교회는 물론 성도들도 바르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목사님들에게 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자각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크신 은혜입니다.
페루장로교신학교의 주 학과는 목회학과(4년 과정)이지만 ‘21세기 목회자 연장교육(2년 과정)’ 과정에 학생이 더 많습니다. 이 과정을 개설하고 4년이 지난 지금 2년 과정 수료생이 40명이며, 매 학기 50명 이상 등록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목회하는 교회는 대부분 스스로 개척한 곳이 대부분입니다. 예배당의 건축 상태는 열악하며, 성도는 50명 안팎입니다. 헌금이 적어 교회로부터 받는 사례는 없거나 명목적인 수준의 금액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다른 직업을 가진 목회자가 대부분입니다.
헌금액이 적다 보니 목회자의 사례 책정 방법도 다양하게 발달했습니다. 매월 일정액을 정하는 경우보다는 교회 전체 수입의 일정 부분(보통 50∼60%), 혹은 구약시대에 모든 십일조가 제사장 몫이었던 것처럼 모든 십일조 헌금을 목회자 사례로 책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헌금의 대부분이 목회자 사례로 나가게 되고(그래도 가족 생활비에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교회의 전도·교육·봉사 사역에 배정되는 재정은 매우 열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운영비도 감당이 안돼 전기요금을 못 내 전기가 끊기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교회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고, 교회 성장이 되지 않으니 목회자 사례를 지급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런 목회자들이 저희 신학교에서 교회 사명이나 교회행정 및 운영에 대해 공부하면 “우리 교회는 작아서 그런 걸 할 수 없고 필요도 없다”며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하지만 막상 수업이 진행되면 “아, 우리 교회에 이런 문제점이 있었구나”라며 어느새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아우구스또 목사님도 이 과정에 입학해 2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배우는 과목 하나하나마다 먼저 은혜를 받으면서 ‘내가 이것을 몰랐구나!’하며 감탄하곤 합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택시를 몰고 신학교에 들어와 교정에 주차해 놓고 하루 수입을 포기한 채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2기로 졸업한 뒤 새로운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저지에서 온 단기선교팀이 아우구스또 목사님의 교회에서 의료 전도 봉사 사역에 나설 때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도착한 청년들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여기가 예배당이에요? 여기서 어떻게 예배를 드려요?” 손바닥만한 공간에 창문도 없는 어두컴컴한 예배당을 보고 당황한 것입니다. 뉴저지의 청년들은 그날 그 달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열심히 전도하고 돌아갔습니다.
얼마 전 교역자 연합 모임에서 아우구스또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습니다. 가족 교회 모두 잘 지낸다면서 힘 있게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작년에 교회 뒤편의 땅을 샀습니다. 금년에는 예배당을 조금 더 크게 넓힐 것입니다.”
아우구스또 목사님의 교회 이름은 ‘후에고 레스쁠란떼씨안떼(Fuego Resplandeciente·광채나는 불)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환상(겔 1:27)에서 따온 이름으로 여호와의 영광을 형상화한 모양입니다.
‘21세기 목회자 연장교육’ 과정에 참여하는 목사님들의 생업은 다양합니다. 의사, 교사, 방문판매원, 건축노동자…. 그 중 상당수가 택시 운전을 합니다. 목회자들에게 택시 운전이 매력 있는 것은 시간 관리가 자유롭고,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라 돈을 벌면서 전도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차량이 목회에도 유용하게 쓰이는 장점이 있습니다.
새 학기가 막 시작됐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열정만으로 목회 현장에 던져져 부딪치고 깨지며 답답해하던 페루의 목회자들. 그들이 이제 신학교에서 나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분별하고, 성도들을 더 잘 양육하며,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더 잘 감당하는 길에 대해 배울 것입니다.
이분들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의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 섬기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신학과 목회의 지식만이 아니라 주님의 위로와 능력과 소명과 비전도 함께 주는 신학교가 되기를 소망하며, 바울의 기도가 우리 신학생 한분 한분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7b∼19)
김명수 페루장로교신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