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현금이면 깎아드려요”
입력 2013-03-04 17:32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만3679달러로 세계 34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3일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를 GDP의 23%, 290조원으로 추정한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를 근거로 단순 계산해 보면 1인당 GDP는 2만9148달러로 늘어난다.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져 몇 년째 국민소득 2만 달러 전후 수준에 멈춰 있다지만 지하경제 규모를 포함하면 3만 달러 돌파도 시간문제다. 지하경제 양성화가 시급한 이유다. 하지만 쉽지 않다. 지하경제란 정부의 과세·규제를 피할 목적으로 운영되는 경제활동의 총칭인 만큼 이를 지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하면 저항이 적지 않을 터다.
그럼에도 그것은 시대적 과제다. 새 정부가 복지 확대를 위한 세수 증대 차원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주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이 문제의 해결은 선진국 진입을 위한 통과의례나 같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13%(2007년)가 아닌가.
네덜란드의 ABN-AMRO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2000년 현재 미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2%이고 영국 3∼15%, 독일 4%, 프랑스 7%, 네덜란드 6∼18%다. 가도쿠라 다카시(門倉貴史)는 저서 ‘일본 지하경제백서’(2005)에서 일본의 규모를 GDP의 3.3%, 23조엔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 전체 실물경제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지하경제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새로운 성장동력 개발을 통한 경제도약 이상의 대역사나 다를 바 없다. 국세청도 4일 세무 분야 조사 인력 400명을 보강해 가짜석유 제조·판매자, 고소득 자영업자, 불법 사채업자, 역외탈세 등 4대 분야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지하경제의 주요 내역은 탈세를 비롯해 폭력단 연계사업, 매춘, 불법 사채업, 도박 등이다. 가도쿠라에 따르면 탈세가 일본 지하경제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경제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감안하면 기록·보고되지 않은 경제 부문, 즉 탈세 문제 해결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게 당연하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민의식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현금이면 깎아드려요”라는 달콤한 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다. 싸게 살 것인지 아니면 탈세를 조장하는 데 동참할 것인지. 나만의 ‘행복’보다 탈세를 막아 다함께 그 결실을 누리는 쪽으로 시민정신이 발휘될 때 비로소 지하경제는 하나둘 무너져 내릴 것이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