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한·미 FTA 전후 對美 로비

입력 2013-03-03 18:35


‘정치·안보·경제를 포괄하는 굳건한 다원적 동맹’이라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이면에는 우리 기업들의 대미 로비자금이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우리 경제계가 한·미 FTA 타결을 전후해 미 의회와 행정부 등을 상대로 쓴 로비자금이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3일 미 상원의 로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전경련은 2006년 11월 두버스타인 그룹(Duberstein Group)을 로비스트로 고용한 뒤 지난해 말까지 총 144만 달러(약 15억6500만원)의 로비자금을 지출했다. 미 상원은 관련법에 따라 매 분기마다 기업들이 신고한 로비액수·이슈를 공개하고 있다. 전경련은 미 의회 등에 후원금을 전달하면서 한·미 FTA의 이행(Implementation of US-Korean FTA)을 촉구했다.

한국무역협회도 2009년 10월부터 2010년 9월까지 33만 달러(약 3억6000만원)를 지출했다. 무역협회와 로비스트가 미 상원에 신고한 로비 이슈는 짤막히 ‘한·미 FTA(KORUS-FTA)’라고 표현돼 있다. 지식경제부 산하 중소기업 지원 기관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도 비슷한 기간 32만 달러(약 3억5000만원)를 로비자금으로 썼다.

단일 기업으로는 미국과의 FTA 체결로 가장 큰 혜택을 받는 현대자동차의 거액 로비가 눈에 띄었다. 현대차는 2006년부터 2011년 말까지 매 분기마다 활발한 로비를 벌이며 총 269만9000달러(약 30억원)를 썼다. 현대차가 신고한 로비 보고서에는 ‘한·미 FTA에 대한 지지(Support of Korea-US FTA)’라는 문구가 다수 포함돼 있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미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한 전경련은 FTA의 발효 이후에도 로비를 계속하고 있어 주목된다. 전경련은 지난해 3월 15일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에도 매 분기마다 10만 달러씩을 고정적인 로비 자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미국 내 한국인의 전문직 비자 쿼터를 확대하기 위해 미 의회를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전경련 등이 미 정치권에 건넨 로비자금에 대해 일부 학계와 정치권은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로비행위는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일이지만 동등한 국가간 협상에서 지나치게 저자세로 임했음을 방증한다는 지적이다. 또 FTA 체결 시 유·불리한 업종과 업체가 존재하는데, 로비에 동원할 자금력이 있는 일부 대기업에만 유리하게 작용한 부익부 빈익빈의 협상임을 증명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박주선 의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통상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경제단체가 협상 상대국에 상당 규모의 로비자금을 지속적으로 지출한 것은 낮은 외교력으로 인한 추가 비용”이라고 비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