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불안에 떤 휴일밤 서울… 총기 쏘던 美軍, 1시간여 도주극

입력 2013-03-03 23:59
총기 소지가 의심되는 주한미군 병사들이 서울도심 한복판에서 1시간 넘게 심야 도주극을 펼치는 동안 3일 새벽 서울은 말 그대로 무법천지였다. 20여분간 이들을 뒤쫓은 이는 단 한 명의 경찰관이었다. 그것도 경찰 순찰차가 아닌 택시를 타고서다.

2일 오후 11시53분쯤 경찰 112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 이태원동 H호텔 앞에서 누군가가 공기총인지, 새총인지를 쏘면서 간다”는 긴박한 내용이었다. 신고를 받은 서울 이태원파출소 소속 경찰관 2명은 현장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총기 난사 사건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단 2명의 경찰관만 현장에 출동했다.

주한미군 병사들이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방향으로 도주하자 경찰이 취한 조치는 인근 보광동 C아파트 앞과 녹사평 로터리에 순찰차 1대씩만 배치한 게 전부였다. 물론 주한미군 병사들이 이미 녹사평역 주변을 떠난 뒤였다.

주한미군 병사들이 탄 차량이 서울 자양동 성수사거리의 막다른 골목까지 가는 동안 이들을 추격한 경찰은 임성묵(30) 순경이 유일했다. 그것도 최모(38)씨의 택시를 타고 쫓아갔다. 임 순경은 3일 0시10분쯤 실탄까지 쏘며 검거를 시도했지만 도주를 막지 못했다. 임 순경이 추격 당시 112상황실에 이들의 도주 방향을 알렸고, 인근 서울 성동경찰서 관계자들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주한미군 병사들이 이곳을 떠난 지 5분이 지난 후였다.

이후 주한미군 병사들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오전 1시3분쯤 서울 용산 미8군 영내로 귀환했다. 용의 차량이 도주할 때 실시간으로 상황이 전파돼 도로를 차단하거나 순찰차를 긴급 출동시키는 시스템(C3)이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결국 이들은 1시간10분 동안 서울시내 곳곳을 누볐지만 그들을 막아선 공권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행정안전부의 명칭을 안전행정부로 바꾸면서까지 안전을 강조했던 새 정부의 의지를 무색케 하는 대목이다.

서울 이태원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모(52)씨는 “그들이 실제 실탄을 쐈다면 어땠을지 섬뜩하다”며 “위급상황에서 시민들이 믿는 것은 경찰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또 부실 대응 논란이라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