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김영란법의 불안한 미래

입력 2013-03-03 17:54


‘전관들의 화려한 귀환’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김영란법’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법의 공식 명칭은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다. 법안이 주목받는 이유는 핵심 내용들이 최근 현상들을 정확히 지적하고, 이를 처벌하는 규정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공무원을 너무 심하게 처벌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법안이다.

우선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조항이 있다. 민간인이 차관급 이상의 고위공직자나 공공기관의 장으로 임용되자면 임용 직전 2년간의 활동을 신고해야 한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이 조항에 적용된다. 김 후보자는 장관 후보자가 되기 전 국내 무기중개업체에서 비상근 고문으로 일하며 2억1500만원을 받았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장관이 되기 전 자신의 무기중개업체 활동사항을 꼼꼼히 신고해야 한다. 김 후보자가 자신의 활동을 사전에 신고했다면 국방부 장관에 지명될 수 있었을까.

금품수수 금지조항도 있다. 공직자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았다면 대가성 여부에 관계없이 처벌토록 한 조항이다. 기존 법으로는 공무원이 돈을 받았더라도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입증돼야 처벌할 수 있다. 2010년 전·현직 검사들이 건설업자로부터 돈과 향응을 받았다는 ‘스폰서 검사’ 의혹 사건이 있었다. 스폰서 검사들은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 받았다. ‘향응을 받았으나 대가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 중 하나였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른바 공직자들의 떡값, 스폰서 비용 등도 처벌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부정청탁 금지조항이다. 제3자를 통해 부정청탁을 하면 과태료를 물리고, 부정청탁을 들어준 공무원은 형사처벌토록 했다. 현재 공직자윤리법 등에도 비슷한 조항이 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명문화하고 구체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전관들의 청탁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기대된다.

일반 국민들은 박수칠 내용이지만 김영란법의 미래는 밝지 않다. 법안이 입법예고된 것은 지난해 8월 22일이었고, 그로부터 6개월이 흘렀다. 법안은 아직 국민권익위원회 손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법안이 정식으로 발효되려면, ‘입법예고→정부부처간 조율→총리실 규제심사→법제처 법령심사→차관회의→국무회의→국회 소관 상임위 심사→국회 법사위 심사→국회 본회의 통과’라는 9단계를 거쳐야 한다. 김영란법은 현재 두 번째 단계인 법무부와의 법안 조율 단계에 머물러 있다.

법무부 측은 지난해 11월 초 ‘직무 관련성 없는 일체의 금품수수를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공직자를 차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의견을 전해왔다고 권익위 측은 밝혔다. 권익위 관계자는 “정부부처 내 조율을 거치지 못했으니 언제쯤 총리실로 넘어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 내 조율을 거쳐 국회로 넘어가도 문제다. 권익위원회의 소관 국회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와 법안 내용을 담당하는 행정안전위, 법률가들이 포진해 있는 법사위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입법 예고 후 다음 단계까지 넘어가는 데만 6개월 이상 걸리는데, 9단계 모두를 통과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더라도, 각종 이익단체들의 청탁과 로비 때문에 법안이 누더기처럼 변질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생긴다. 공직자에 대한 과잉처벌 문제가 법리적으로 문제된다고 하지만 이 법안을 주도했던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은 대법관 출신이다. 김영란법이 올해 안에 국회를 통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