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정종미] 일본 온천의 매력
입력 2013-03-03 17:55
한 학기가 끝나면 쉬고 싶어진다. 힘든 과제를 마치고 나면 피로감이 중첩된다. 모든 상황이 주는 구속으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일을 하다보면 일 자체로 힘든 것보다 사람으로 인해 생기는 피로가 가장 심각하니 이럴 땐 사람을 피해 자연으로 도망을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다.
어디로 가야 하나? 숙제다. 요즘 웬만한 장소는 모두 인터넷에 나오기 때문에 정보는 많다. 그러나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좋다고 할 만한 곳은 너무 멀거나 비싸거나 아니면 사람이 붐빈다. 그러다보면 예약이나 공항 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해외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온천을 좋아하는 나는 해마다 일본으로 떠난다.
역사와 자연이 빚어낸 고유 문화
경험자는 알겠지만 일본 온천의 첫 번째 장점은 수질이다. 화산지대가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다. 다음으로는 온천문화가 자연친화적이라는 것이다. 미각, 시각, 촉각 등 모두가 지극히 일본 냄새가 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어 일상을 떠난 느낌이 배가 된다. 짧은 일정에도 일본에서의 여행은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간을 훌쩍 넘게 해준다. 단순한 재미나 휴식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느끼게 해준다. 이런 여행은 후유증(?)을 남겨 다음 여행에 이를 때까지 생활의 활력소가 돼준다.
온천 중에도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 만들어진 노천탕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돌, 풀, 나무 그리고 하늘이 눈앞에 펼쳐지는 노천탕은 신비함과 경이로움이다. 지구의 내면, 그 뜨겁고도 깊숙한 품속에서 달구어져 나온 이 신비의 물은 인간을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미네랄과 같은 지구의 체액이 녹아있는 이 물에 몸을 담그면 어머니 품속 같은 느낌을 준다.
지구의 체온은 온몸으로 퍼지고 스며들어 나를 소생시킨다. 수열로 가열이 되면 눈을 감고 명상에 든다. 지구의 체열이 온몸으로 전해져 온다. 발끝으로부터 조금씩 차오르며 다리, 허리 그리고 가슴과 목까지 스며들면 몸속에는 대류 현상이 일어난다. 수면 밖의 내 머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며 한바탕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몸이 응답하는 것이다. 가느다란 액체 줄기가 머리로부터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감촉이 느껴진다. 감사함이다. 고마움이다.
온몸의 탁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면 눈을 떠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모든 것이 또렷해 보인다. 내가 맑아졌음이다. 돌도 만져보고 나무의 자태도 감상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보내기도 한다. 물 밖 바위에 걸터앉아 찬란한 햇살을 입어본다. 열탕과 냉탕을 드나들 듯 수면 밖에서 만나는 공기가 신선하다. 피부가 김을 내며 이들과 조응한다. 이 호사는 대학졸업 후 삼십여년 고행에 버금가는 그림 작업으로 낡아 바스러질 듯 쇠약해진 내 육신에 대한 보상이자 선물이다.
노천탕의 매력은 자연회귀이다. 도심에 익숙한 우리가 언제 훌훌 벗어던지고 에덴동산의 발가벗은 이브마냥 자연을 즐기겠는가. 자연을 잃고 사는 현대인들의 피로를 푸는 데 노천탕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자연에 몸을 맡기고 치유의 기도를 올린다.
수영장과 혼동하는 한국 현실
이번 겨울에도 일본 노천탕 생각이 간절했지만 사정이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비록 시멘트 범벅이지만,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온천으로 달려갔더니 휴업이었다. 부지런히 앱을 뒤져 찾아낸 근처 온천은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우리의 온천은 슬프다. 대부분이 온천과 수영장을 혼동하고 있다. 놀이터나 랜드의 개념을 빼면 온천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조용히 자연을 즐기며 사색할 수 있는 온천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나. 비싼 경비와 시간을 투자해 현해탄을 건너야 하나.
정종미 고려대 교수 디자인조형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