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정욱] 슈퍼볼
입력 2013-03-03 23:40
올해도 어김없이 미국 최대 스포츠 행사인 슈퍼볼이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메르세데스 벤츠 슈퍼돔에서 거행돼 볼티모어 레이븐스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를 누르고 미국프로풋볼리그(NFL)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시청자가 1억명을 넘으며 중간광고 단가가 초당 1억5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슈퍼볼은 올해에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형제가 양 팀의 사령탑을 맡아 하보볼이라는 유행어를 낳았고 유명 가수 비욘세가 식전 행사에서 립싱크로 국가를 노래한 것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던 것이다.
흔히 그 경기 방식 때문에 미식축구를 서부 팽창의 경험을 반영한 미국적 운동으로 여기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식축구는 영국에서 유래한 럭비에 기초하고 있으며 19세기 말 조직 자본주의의 성장을 반영하는 운동이었다. 미식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며 경기 규칙을 만들었던 월터 캠프는 완력과 우연성이 지배한다고 여긴 럭비로부터 미식축구를 차별화하기 위해 공수를 명확히 구별하고 4회의 공격 기회 안에 10야드를 전진할 때 계속 공 소유를 가능하게 하면서 공수 전술의 다양화를 유도하였고 그 결과 선수들의 전문성이 강조되고 전술의 결정권자인 코치를 중심으로 경기가 운영되는 현대 미식축구의 특성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 자신이 시계공장 경영자였던 캠프는 대학생들이 위계에 순응, 조직 중심주의, 협동성, 전문화와 같은 근대 대기업이 중시하는 덕목들을 학습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동시에 이 운동은 당시 부상하는 남성문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대기업의 등장과 경제적 독립성의 상실 그리고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인한 ‘남성성의 위기’ 속에서 상층, 상층 중간계급 남성들은 호전성과 육체적 우월함을 통해 여성에 대한 지배자의 지위를 재차 증명하려 하였다. 그러면서도 호전적 놀이문화를 즐기는 노동계급 남성에 대비해 자신들을 이성적 야수로 단련함으로써 계급적 우월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2차대전 이후 장기간의 경기 호황을 배경으로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여가산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것이 미식축구였다. 특히 텔레비전의 보급은 미식축구로 하여금 당시의 제1 운동이었던 야구를 제치고 최고 인기 스포츠가 되는 전기를 마련해줬다.
1958년 NFL 역사상 최고의 챔피언 결정전으로 꼽히는 볼티모어 콜츠와 뉴욕 자이언츠 간 경기가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열성 팬들을 얻게 된 미식축구는 새로운 커미셔너인 앨빈 로젤이 경쟁자로 등장한 아메리칸 리그를 통합하고 양대 리그 우승팀 간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을 출범시키면서 도약의 계기를 맞았다.
특히 신생 방송국 ABC가 매주 월요일 저녁 황금시간에 수십 대의 카메라를 동원하고 느린 화면 재생과 같은 최신 기법을 도입해 경기를 생중계하면서 미식축구는 일약 미국 최고의 인기 운동이 되었고 슈퍼볼이 오늘날과 같이 전 국민적 행사가 된 것이다.
프로화된 미식축구가 보여주듯 20세기 들어 진행된 스포츠의 상업화는 엘리트 체육을 대중화시켜 계급 경계를 허물었고 운동선수들을 신분 이동의 상징으로 만들면서 인종 통합을 선도하는 등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측면이 있다. 모든 사람들의 축제가 된 슈퍼볼도 그 상징이다. 그럼에도 쿼터백이나 코치와 같은 중요 위치들은 백인들에 의해 독점되고 여전히 여성들은 남성들이 육체적 호전성을 과시하는 장소에서 관객과 치어리더로서의 보조자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상업화된 미식축구는 란제리 풋볼의 사례에서와 같이 여성을 성적 상품으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축제의 한마당을 통해 국민적 단합을 만드는 스포츠가 그 이면에서 사회적 차이를 만들고 사회적 지배를 공고히 한다는 사실은 스포츠가 진정한 민주주주의 상징이 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정욱(고려대 연구교수·역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