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승훈] 총리의 역할
입력 2013-03-03 18:13
개혁군주로 칭송이 자자했던 중국 당나라의 6대 황제 현종에게는 요숭(姚崇)이라는 훌륭한 재상이 있었다. 요숭이 며칠간 휴가를 얻어 자리를 비우게 되자 노회신(盧懷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노회신은 청렴하고 부지런했으나 요숭에 비해서는 역량이 부족했다. 업무는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채 쌓였고, 결국 요숭이 휴가에서 돌아오고 나서야 밀렸던 업무가 비로소 처리됐다.
자신의 역량이 부족함을 깨닫게 된 노회신은 이후 매사를 요숭과 상의해 처리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노회신을 ‘반식재상(伴食宰相)’이라 불렀다. 능력 없이 요숭에게 의지해 얻어먹는 처지라는 조롱이었다.
반식재상이란 말은 능력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호사가들의 입을 빌리면 재상이라는 이들의 대다수는 반식재상이나 마찬가지다. 임금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보좌하는 게 재상의 일이고, 그가 했던 훌륭한 일 역시 임금을 통해서야 빛이 나는 법이어서 밖에서 볼 때 재상의 역할은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총리들이 ‘대독 총리’ ‘의전 총리’ 등으로 불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오늘날 총리의 역할이 대통령과 비교해 제한적이라 하더라도 쉽게 반식재상으로 매도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헌법에 규정된 내각 통할권과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 외에도 총리가 해야 할 일은 많다.
2년5개월을 재임한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퇴임 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총리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에게는 정부의 공식적인 행위로 비쳐지는 데다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총리는 특별한 권한을 행사하거나 눈에 띄는 행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명재상’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말과 행동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았고,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재상이란 단어는 중국 진(秦)나라 시대 이전까지는 노예 혹은 하인의 역할을 했던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어원적으로 보면 ‘재(宰)’는 요리를 하는 자이고, ‘상(相)’은 보행을 돕는 자라는 의미다. 보다 많은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조율하고, 혼자 걷기 힘든 국민을 부축하고 살피는 일이 총리의 역할이라고 보면 2200여년 전과 비교해 재상의 직책은 높아졌으되 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