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발견] (8) 삼선 슬리퍼
입력 2013-03-03 18:12
‘삼선 슬리퍼’라고 불리는 국민 슬리퍼가 있다. 감수성 예민한 중·고생들도 거의 예외 없이 신고 다닌다. 특정 브랜드의 패딩 점퍼와 운동화가 전국 중학생의 유니폼처럼 인기몰이를 하여 논란이 있었는데 삼선 슬리퍼는 이것과는 다른 동일화를 보여준다. 발등을 덮은 갑피와 발포체 바닥이 한 몸으로 되어 군더더기가 없는 데다 가격도 2000∼5000원 정도로 저렴하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굳이 튀어 보이고 싶지 않다면 이 슬리퍼를 마다할 필요가 없으니 ‘소박한’ 동일화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아류라는 오명은 피할 길 없다. 아디다스사가 국내에서 ‘3선 무늬’의 상표권 소송에서 승소하여 재판부가 ‘3선 줄무늬’가 포함된 스포츠 의류를 만들거나 팔아선 안 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운동복은 한 줄부터 여러 줄무늬까지 선택의 폭이 넓어 이 판결을 따를 수 있으나 슬리퍼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발등에 한두 줄만 그은 슬리퍼가 어색할 만큼 이미 세 줄을 그은 슬리퍼가 정형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줄 디자인이 통일된 것도 아니고 세련되지도 않았다. 만드는 곳이 워낙 많고 형태도 조금씩 달라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청소년의 유대와 소속감을 상징한다. 삼선 슬리퍼는 근본 없는 키치적 디자인을 드러내면서도 불량식품 같은 묘한 매력을 지녔다.
김상규(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