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광폭할수록 부드러움이 절실하죠”… 김병종 교수 회갑 기념전 ‘생명의 노래-山水間’
입력 2013-03-03 16:36
단아(旦兒·아침의 아이). 김병종(60)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의 호다. 신선한 아침에 눈 떠서 세계와 사물을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처럼 설렘과 희망으로 아름다운 광맥을 찾아 나선다는 뜻이다.
24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과 두가헌에서 ‘생명의 노래-산수간(山水間)’이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여는 그의 행보가 그렇다. 올해 회갑을 맞았지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회갑 기념전이 개막된 지난 1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30여년의 붓질에 가속도가 붙었다. 창작 의지가 요즘 용솟음치는 것 같다”며 기염을 토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생명의 노래’를 화면 가운데 배치하고 그 배경에 산수를 흐릿하게 그려 넣은 최근작 30여점을 선보인다. 서울대 동양화과를 나온 그가 산수를 창작에 본격적으로 활용한 것은 처음이다.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작가는 어릴 적부터 미술과 문학에 두각을 나타냈다. 중학교 2학년 때 남원역전 복지다방에서 ‘유혹’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고 시집 ‘푸른 밤의 소묘’를 출간하기도 했다. 나뭇가지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화가를 꿈꾸던 그는 집안의 반대로 10년 이상 모아놓은 사생대회 상장들이 모두 불태워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기어코 서울대 미대에 들어가 2학년 때 국전에서 추상화 ‘사직(社稷)’으로 입상하고, 3학년 때에는 전국대학미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40대에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뒤 미대학장과 미술관장 등을 거쳤다. ‘서울대 미대 45년사’를 집필하던 1989년, 연탄가스를 마셔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긴 후 우연히 본 야생화에서 생명의 위대함을 느껴 ‘생명의 노래’ 작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 한국의 현실을 ‘바보예수’라는 작품으로 비유해 화제를 모은 그는 프랑스 독일 헝가리 벨기에 영국 등에서 전시를 가져 대영박물관에 작품이 소장될 정도로 호평 받았다. 1994년 파리에서 열린 미술마켓인 피악(FIAC)에서는 그의 작품이 ‘르 피가로’에 소개되면서 출품작 19점이 개막 첫날 매진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 이후에도 미국 뉴욕, 독일 베를린, 일본 후쿠오카 등에서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새벽 3시까지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정도로 왕성한 창작열을 과시한다. “어릴 때 부모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한 기억이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그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뿐 아니라 한옥 에세이 ‘고요한 황홀 함양당’, 애완견 동화 ‘쟈스민 이야기’, 남미와 북아프리카 미술기행 ‘색(色)에 울다’ 등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과 산수’ ‘수탉 산수’ ‘개미 산수’ 등 재미있는 생명 산수도를 펼쳐 보인다. 작가는 “자연이 화면 중앙에 턱 버티고 있는 동양 산수화의 엄숙주의를 깨고 싶었다. 일종의 자연 패러디인데, 시대가 광폭할수록 절실한 것은 부드러움”이라고 말했다. 분출하는 생명 에너지와 훈훈한 서정을 선사하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이 가득 밀려드는 것 같다(02-2287-359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