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발간 400주년] ‘한방한류’ 세계적 브랜드로 ‘보글보글’

입력 2013-03-01 17:50


한의학 세계화 10년 계획

올해는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맞는 해다. 동의보감은 2009년 7월 보건의학서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정부는 2006년부터 한의학 세계화 10년 계획(2006∼2015년)의 일환으로 동의보감의 우수성과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우리 민족 최고의 의서 동의보감을 세계적 브랜드로 육성해 한의학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이제 그 결실이 하나 둘씩 맺어지고 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이어 2008년부터 6년여에 걸쳐 진행된 동의보감의 영역화(英譯化) 사업이 오는 9월 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는 ‘고전 동의보감’에 현대적 의미를 가미하고 발간 이래 지금까지 400년간 추가된 임상 처방이나 한의학 이론 등을 담은 ‘신(新)동의보감 편찬사업’이 시작됐다.

지난달 26일 찾은 대전 한국한의학연구원 내 문헌·정보연구본부. 가장 안쪽에 자리한 수장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래된 종이 냄새가 확 풍겨왔다. 20㎡(약 6평)의 공간에 색이 바랜 고서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안내를 맡은 권오민(55) 문헌연구그룹장은 “변질되지 않도록 항온·항습 장치가 잘 돼 있다”고 했다. 서고에는 의학고문헌 640여권, 참고 고문헌 590여권이 보관돼 있었다. 동의보감 외에 조선 중기 의학상을 보여주는 사의경험방, 희귀 의서인 봉성신방 등도 소장돼 있다.

동의보감은 원래 목록 2책과 내경편 4권, 외형편 4권, 잡병편 11권, 탕액편 3권, 침구편 1권 등 총 5편 25권 25책으로 구성돼 있다. 권 그룹장은 “이곳에 보관 중인 동의보감은 약 200년 전인 18세기에 발간된 중간 목판본으로, 내경편 1권이 결본돼 있다”고 설명했다.

1596년 어의(御醫) 허준은 선조 임금의 명을 받고 당대 최고 의사들과 동북아 지역 의서에 기록된 의료기술 및 지식 등을 모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지금으로 말하면 의학 관련 ‘국가 최대 프로젝트’인 셈이다. 책은 17년 뒤인 1613년 완성됐다. 이렇게 탄생한 동의보감을 400년 뒤 후손들이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당시는 허준 혼자의 열정으로 역작을 만들어냈지만 지금은 총 100여명의 고문헌 연구자와 한학자, 한의대 교수 등이 함께 편찬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17년 말 출간을 목표로 매년 4억5000만∼5억원씩 총 30억원의 국가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한의학연구원 최승훈 원장은 “동의보감 이후 18∼19세기 실학자 서유구가 편찬한 ‘임원경제지’에서 동의보감에 버금가는 방대한 의학지식을 정리한 적이 있지만 이후로 상당 기간 괄목할 발전을 만들지 못했다”면서 “400년 만에 본격적인 동의보감 개정 작업이 시작된 것은 다행스럽다”고 평가했다.

신동의보감 편찬 작업은 역사문헌, 기초한의학, 현대임상, 한국형 한의학의 네 분야로 나눠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역사문헌 분야는 동의보감에 대한 현대 의학적·역사문화적 시각으로 풀이하는 해설, 의학적 성과에 대한 ‘증보’, 증보에 대한 우리말 번역과 해설이 포함된다. 기초한의학 분야는 한약재(본초), 처방, 침구와 경혈 등에 관한 현대 과학적 연구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실제 환자를 돌보는 일선 한의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침의 효용성과 한약 처방 및 한약재의 위해성 여부 등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도 담길 예정이다. 현대임상 분야는 당뇨병, 추간판탈출증(디스크), 아토피피부염 등 200여 가지 현대적 질환의 한의학적 진단과 치료 기술이 망라된다. 한국형 한의학엔 동의보감 이후 국내 한의사가 자체 개발해 현장에서 쓰고 있는 여러 한의학 이론과 치료 기법이 체계화될 예정이다. 인간을 4가지 체질로 구분해 맞춤식 진료를 하는 이제마의 ‘사상의학’, 인간 형상(생김새)의 편차에 따라 치료법을 달리 하는 박인규의 ‘형상의학’ 등이 대표적이다. 권 그룹장은 “한마디로 400년 전 나온 자료에 덧붙여 최근 한의학 지식을 넣는 작업이다. 지금까지 각 분야별로 평균 15% 정도 편찬 작업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새 한의학 부분이 추가된다면 동의보감보다 방대한 분량이다. 동의보감 25권은 약 2500면(쪽)으로 돼 있다. 권 그룹장은 “신동의보감은 추가되는 부분을 합쳐 1만쪽을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독자층을 누구로 할지 논란이 있었지만 70%는 한의사들, 30%는 보건의료 종사자나 정책 입안자들이 될 것으로 보고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물론 일반인도 한의학에 관심 있으면 누구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의보감 현대화·세계화 프로젝트의 또 다른 축인 ‘영역화’ 작업은 거의 완성 단계다. 동의보감을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번역, 가공해 해외 연구자·일반인에게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2008년 동의보감 영문 개설서 발간을 시작으로 2009년 침구편(침과 뜸) 1권, 탕액편(본초 약물) 3권, 2010년 내경편(몸 안의 세계) 4권, 외형편(몸 겉의 세계) 4권, 2011년 잡병편(인간·환경·질병Ⅰ) 5권, 2012년 잡병편(인간·환경·질병 Ⅱ) 6권을 각각 영어로 번역해 총 8권으로 줄여 펴냈다.

경희대한의대 교수 등 한의학자와 전문 번역, 감수, 교정, 글로벌 자문 등 총 100여명의 인력과 보건복지부 예산 7억7000여만원이 투입됐다. 동의보감400주년기념사업단 안상우 단장은 “한의학 문헌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주요 용어와 의미있는 주제어는 한자와 한글을 병용했다”면서 “다양한 전공자들의 협업으로 이뤄지는 관계로 조정 역할이 가장 어려웠다”고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올해 동의보감 목록집 2권과 주요 용어 색인집 간행까지 마무리하면 동의보감 전 25권이 완역된다”면서 “오는 9∼10월 산청에서 열리는 세계전통의학엑스포 개최에 맞춰 총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문 동의보감은 전통의학 관련 국내외 기관과 대사관 문화원 등에 온·오프라인을 통해 무료 배포되고 동의보감사이버박물관에도 올려질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사상의학이나 사암침법 등 우리만의 독창적인 한의학 치료술을 세계무형문화재에 등재되도록 노력하는 등 전통의학지식재산을 세계화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