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굿바이 파파

입력 2013-03-01 17:14

작가 이철환의 자전적 에세이 ‘행복한 고물상’에는 ‘우리들의 지붕, 아버지’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여름 산동네 단칸방 지붕이 무너질 듯 폭우가 쏟아졌다. 그러더니 천장에서 비가 주룩주룩 새고 어머니는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양동이를 받쳐 놓았다. 고물상을 하는 아버지는 속이 상했는지 밖으로 나가 버린다. 밤이 깊어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이 아버지를 찾으러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 돌아오는 길에 지붕 위에 시커먼 물체를 발견한다. 아버지가 맨발로 깨어진 지붕 위에 올라가 우산을 받치고 밤새 빗물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이처럼 살갑진 않아도 온 가족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이자 버팀목이다.

성 프란체스코가 어느 날 꿈을 꿨다. 긴 모랫길이 펼쳐져 있고 그 길에는 네 개의 발자국이 길을 따라 나 있었다. 예수가 “이것이 네가 살아온 길”이라고 하자 프란체스코는 “왜 발자국이 네 개냐”고 물었다. 예수는 “네가 나면서부터 내가 늘 함께 걸어왔다”고 했다. 발자국은 언덕을 넘고 사막을 건너서도 계속됐고, 너무 높고 험한 산길에서는 발자국이 두 개만 나타났다. 프란체스코가 “왜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혼자 두셨습니까”라고 원망하자 예수는 “그 발자국은 내것이다. 내가 너를 업고 걷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가시밭 인생길을 가면서 시련이 닥칠 때 인간은 좌절한다. 성경은 공중에 나는 새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울 들풀도 하나님께서 돌보신다고 말한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태 6:30)라고 인간의 나약함을 꾸짖고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여호수아 1:5)라고 약속하지만 끊임없이 신을 의심하는 게 인간이다.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에 자진 퇴임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7일 마지막 일반 알현에서 “거친 파도와 바람에 직면한 순간, 신이 주무시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했다.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과 교황청 내 권력다툼 등 그의 재임 8년은 격랑의 시기였다. 교황을 뜻하는 영어 포프(pope)는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용어인 라틴어 파파(papa), 그리스어 파파스(pappas)에서 유래됐다. 위대한 신의 사람, 인간들의 신앙의 아버지인 교황도 인간적 고뇌를 비켜가지는 못했나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