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호모루덴스

입력 2013-03-01 17:08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선 흔히 목숨을 걸면 된다고들 한다. 목숨 걸고 공부하고 목숨 걸고 일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는 것. 그런데 목숨 걸고 노는 부류도 있다.

영국 연구진이 5개 동물원의 고릴라를 3년에 걸쳐 분석한 결과 술래잡기를 하는 사례를 86개나 찾아낸 것. 고릴라들은 아이들처럼 서로 술래 역할을 바꿔가며 놀기도 했다.

돌고래의 경우 정수리의 물을 내뿜는 분수공으로 숨을 내쉴 때 각도와 힘을 미세하게 조절해 여러 가지 모양의 공기방울을 만들어 공처럼 가지고 노는 사례가 관찰되었다. 영국 웨일스 지방의 갈가마귀는 눈비탈에서 미끄럼을 타며 놀고,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노는 물소도 관찰된 바 있다.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에서 놀이는 에너지 소모를 많이 시킬 뿐더러 매우 위험한 행동이기도 하다. 일례로 물개 새끼들의 경우 재미있는 놀이에 빠졌을 때 포식자가 접근하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잡혀먹히는 개체수가 80%나 된다. 그럼에도 동물들은 왜 이처럼 목숨 걸고 노는 것일까.

생물학자들은 운동이론과 기량훈련이론을 제시했다. 놀이를 통해 근육과 지구력을 발달시킨다는 것이 운동이론이고, 짝짓기나 사냥 따위의 기술을 익힌다는 게 기량훈련이론이다.

그밖에 새롭게 제기된 것이 지능발달이론이다. 놀이를 가장 좋아하는 포유동물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몸 크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뇌가 큰 동물일수록 더 잘 논다는 주장이다. 즉 놀이가 뇌신경 회로의 생성과 원활한 작동을 촉진해 뇌 성장에 중요한 자양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공부 잘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 잘 논다는 말이 일리가 있었던 셈이다.

놀이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화해의 장으로 바꾸는 기적 같은 사례도 관찰되었다. 오랫동안 굶주린 북극곰은 동족도 잡아먹는 무서운 동물이다. 그런데 굶주린 야생 북극곰 한 마리가 한 마을로 내려와 썰매를 끄는 시베리안 허스키 무리와 팽팽히 맞서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때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가 북극곰에게 다가가 코를 몸에 비비며 장난을 걸자 북극곰도 개들과 함께 눈 위를 뒹굴면서 놀이에 빠져든 것.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인 ‘호모 루덴스’라고 표현했다. 소통과 창의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를 맞아 우리 사회의 놀이문화가 좀 더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성규 (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