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이지현] 가장(家長)의 귀환

입력 2013-03-01 17:21

“나의 이름은 남자입니다. 남자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모여 기다려도 일이 있으면 늦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이 생일날은 기억하지 못해도 친구와 한 약속은 어김없이 지켜야 의리 있는 사나이인 줄 알았습니다. 가정의 소소한 즐거움보다는 직장과 조직에서의 성공이 더 위대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나의 이름은 아버지였습니다. 머리 한번 쓰다듬어주길, 다정한 말 한번 건네주길 바라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이름은 남편이었습니다.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준 음식을 함께 먹어주고 밖에서 있었던 일을 소곤소곤 이야기해주길 바라는 남편이었습니다. 환갑을 앞둔 지금에서야 내 이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커서 내 곁을 떠났고 아내 역시 나보다는 친구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내게 남은 것은 메아리와 같은 고백입니다. 좀 더 일찍 나의 이름을 알았더라면….”

한 가장의 눈물겨운 고백이다. 한 남자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수많은 과정을 겪지만 남편,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배운 일은 없다. 단지 뿌리 깊은 유교문화 속에서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것만 배웠다. 어느새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인식 지도(地圖)’가 돼버렸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성공한 남자들은 많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숙한 아버지는 흔하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경건한 아버지의 모습이 필요하다. 가정에서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데 실패한 자녀들이 사회성을 키우지 못하고 사회로 진출했을 때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건한 가장의 영향력은 세상을 바꿀 만큼 크고 위대하다.

그것은 ‘참된 아버지됨’이라고 생각한다. 포용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할 줄 아는 곧은 심성, 신앙을 자녀에게 전수하는 아버지의 권위가 그것이다.

아버지들이여, 만일 이제까지 직장에서 성취라는 사다리를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었다면 이젠 내려와서 내 영혼과 영원히 함께할 가정이라는 사다리로 바꾸어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세상을 창조하면서 이미 우리를 택하신 그분이 조심스럽고 귀하게 만든 소중한 존재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