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日기업 주주들의 변신] 조선인 주요 株主 행적… 일제 협력하며 통큰 투자

입력 2013-02-28 22:09


‘조선인 노무자 공탁기록’ 주주 명부는 일제강점기 우리 사회 지도층의 집대성이었다.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해방 이후 정·관·재계 섭렵=1945년 해방 이후 주일공사와 국회의원, 한국경영자총협회 초대회장 등을 지낸 김용주는 일제강점기 식산은행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식산은행은 조선총독부의 관치은행으로 조선 금융산업 수탈에 앞장섰다. 식산은행 전주지점장을 지낸 박만원도 2·3·4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함경도 재벌’로 불린 설경동은 식민지 수탈기업인 조선식량공업 임원을 역임했지만 해방 이후 기업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대한방직, 대한전선, 대동증권 사장 등을 지냈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 직후 군부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이유로 10억원을 강탈당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끌려간 광산을 운영했던 임흥순은 2·3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뒤 서울시장까지 지냈다. 조선총독부 판임관(관리)이었던 조한복은 해방 이후 금융인으로 변신, 보험업계에서 활동했다. 일본 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를 지낸 조성근의 장남 조백현은 해방 이후 서울대 농대 학장에 올랐다. 이들은 정부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66명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일본 기업 주식 보유와 일제 시절 행적을 살펴볼 때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 친일파들의 화려한 변신=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은 통 크게 투자를 했다. 박흥식, 최창학, 한상룡 등 대표적 친일파들은 각각 1만엔 이상 주식에 투자했다. 이들은 노골적인 친일행위를 했지만 해방 이후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에서 무죄 처분을 받는 등 화려하게 변신했다. 일본군 조종사를 양성하는 조선항공공업소를 운영했던 신용욱은 1948년 대한국민항공사를 설립했고, 2·3대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친일부역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이사를 지낸 이종린은 반민특위에서 무죄 석방된 뒤 2대 국회의원에 올랐다. 식민수탈기업인 조흥사 등의 주식에 51만7504엔이라는 거액을 투자한 박흥식도 1949년 반민특위에서 무죄로 풀려나 기업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3·1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신태악은 이후 변절해 친일파 정치조직 대의당에 참가하는 등 친일활동에 매진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반민특위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자유당 감찰위원장을 지낸 뒤 1958년 대한변호사협회장까지 역임했다.

황민호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숭실대 교수)는 28일 “해방 이후 지도층으로 변신한 이들이 일제강점기에 했던 경제적 부일활동이 이번 분석 결과 드러났다”며 “해방 이후 6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재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