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회의 우여곡절과 대응하는 ‘못의 운명’… 김종철 시인 신작 시집 ‘못의 사회학’ 펴내

입력 2013-02-28 17:44


‘못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종철(66·사진) 시인이 여덟 번째 시집 ‘못의 사회학’(문학수첩)을 출간했다. 시집 ‘못에 관한 명상’(1992) 이래 그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못 연작시’의 네 번째 시집이기도 하다. 시집은 못의 다양한 생김새와 쓰임새를 통해 못이 우리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내가 내 곁에 처음 누운 밤이다/ 수도원의 돌쩌귀는/ 암짝과 수짝으로 따로 누워/ 바람 센 문짝을 잡아주었다/ 그 밤이 말했다/ 세상의 고리못은 닭 모가지 잡듯/ 비틀어 잡으라고/ (중략)/ 아직도 암짝만 남은 골고다 돌쩌귀/ 새벽이 오지 않아도/ 들쇠고리만 본 우리는 곧 너라고 믿었다”(‘돌쩌귀 고리못에 대하여’ 부분)

암수로 짝을 이뤄 문짝을 지탱해주는 돌쩌귀 고리못 가운데 암짝만 남고 수짝은 없어졌다한들 한때그곳에 문이 있었다는 건 사실일진대, 시인은 암짝만 남은 들쇠고리를 보고도 ‘우리는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는 종교적 함의로까지 이 시를 밀어붙이고 있다.

“무두정은 대가리가 없다/ 박힌 몸이 돌출되지 않고 묻히므로/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그날 그렇게 목 잘려 순교했다”(‘무두정에 대하여’ 부분)

대가리가 없는 무두정을 죽어가는 순교자로 비유한 이 시는 목숨의 경건함과 신앙의 위대함에 대한 외경을 드러내 보인다. 대저 순교하지 않은 종교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인류의 역사는 종교를 통해 더 깊어져 왔던 것이니, 예수의 손에 박힌 못의 이미지가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내 유년의 춘궁기/ 등 굽은 가난이 자주 맨발 밟던/ 타작마당 곡정(谷丁)에는/ 론다 절벽보다 더 가파른 보릿고개 있어/ 그날 무지개 쫒다 벗겨진 고무신/ 발 기도문을 읽는다/ ‘제발 한 푼 줍쇼’”(‘곡정에 대하여’ 부분)

보릿고개의 등 굽은 가난을 구부러진 못인 곡정에 비유하며 어린 시절 겪었던 춘궁기의 배고픔을 떠올리는 시인은 이처럼 다양한 못의 형태를 인간 사회의 우여곡절과 대응시키면서 하나의 상징 체제를 완성시키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못의 시학’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풍자와 은유를 동반한 비판 정신이다.

“요즘 오랑우탄이/ 사람 옷 입는 쇼를 왜 거부하는지/ 조련사는 알지 못한다/ (중략)/ 을만 죽는 을사(乙死)조약/ 사람 옷 입힌 우리 시대의 동물원”(‘우리 시대의 동물원’ 부분)

조련사(재벌)가 오랑우탄(사회적 약자)을 길들이고 있는 오늘날의 물신주의, 자본의 폭력성을 풍자한 이 시를 통해 시인은 ‘못의 사회학’을 ‘우리 시대의 사회학’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집은 ‘못 시학’의 한 결실이자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가는 방향키인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