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최인호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

입력 2013-03-01 00:45

“이번에 새 책을 펴내면서 여러분들과 함께 만나 인사도 나누고 싶었는데 부득이하게 제가 가톨릭 피정 중에 있어 그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올해 등단 50년을 맞은 소설가 최인호(68·사진)가 신작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도서출판 여백)을 출간하면서 언론사 기자에게 책갈피에 끼어 보낸 메모 내용이다. 산문집엔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보에 5개월간 연재했던 글이 1부에 묶이고 2부엔 암 투병 이후 쓴 9편의 글이 실렸다.

“2008년 6월 13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수술을 받았다. 아침 8시에 수술실에 들어가서 오후 7시에 나오는 열 시간이 넘는 대수술이었다. (중략) 나는 병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오직 죽음일 뿐. 병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2부-새봄이 일어서고 있다’)

산문집은 지난 5년간의 투병기록이자 ‘끝’에 이르러서 깨닫게 된 삶의 진실을 담은 그만의 일기이다. 암 투병 소식이 세상에 알려진 후 착잡해졌던 마음, 수술로 입술이 마비돼 밥을 흘리다가 어느 날 무심결에 휘파람을 불고 나서 전율하던 기억, 입원실에 누워 더듬은 ‘참나’, 들꽃 이름을 하나씩 외워 불러줄 때 꽃들이 대답하는 기쁨 등을 차례로 적었다.

말미에 있는 세 편의 글은 특히 눈길을 끈다. 영화 ‘울지마 톤즈’의 실제 주인공인 고(故) 이태석 신부와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법정스님과 맺었던 인연과 이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2010년 이미 병색이 완연한 몸으로 입원해 있던 이 신부가 오히려 자신에게 용기를 심어주며 격려했던 기억이며, 김 추기경의 입술에 번져 있던 미소와 생전의 인연을 떠올리며 일주일 내내 울었던 일을 고백하고 있다.

작가는 머리글에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어서 어서 꽃 피는 춘삼월이 왔으면 좋겠다. 혹여나 이 책을 읽다가 공감을 느끼면 마음속으로 따뜻한 숨결을 보내주셨으면 한다. 그 숨결들이 모여 내 가슴에 꽃을 피울 것이다”라고 썼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