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미달 민간요양시설 142곳 ‘불법시설’ 되는데… 거동불편 노인 9천명 거리 나앉을 판

입력 2013-02-28 14:56


28일 오후 3시 서울 창동 다사랑노인요양원 앞. 60대 이모씨가 남편의 휠체어를 밀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정문을 나섰다. 이씨는 “치매를 앓는 남편이 이곳에서 2년 넘게 지냈는데 갑자기 (시설이) 폐쇄된다고 해서 일단 집에 모시고 간다”며 “아이들은 직장 다니고, 나도 허리병으로 수발이 어렵다. 당장 누가 돌볼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3월 1일부터 이 요양원은 시설기준 미충족으로 일종의 ‘불법’ 시설이 된다. 이 때문에 장혜숙 대표는 며칠 전부터 보호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환자를 데려가 달라”고 사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설을 나간 환자는 고작 4명. 장 대표는 “대부분 ‘갈 곳이 없다’고 버티고 있어 난감하다”고 전했다.

같은 시간 전국의 노인요양시설 대표 50여명이 모인 번동 한국단기전환노인요양시설협의회(한단협)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도 ‘폐쇄’라는 단어는 곳곳에서 반복됐다. 길동 그랜드너싱홈 김치영 원장은 “강동구청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보호자에게 폐쇄를 통보해 이미 환자 2∼3명이 시설을 나갔다”며 “나머지 분들은 ‘갈 데가 없다’고 매달리고 있어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치매 등 노인성 질환자 8500여명을 수발들고 있는 민간 노인요양시설들이 대규모 폐업 위기에 몰렸다. 2010년 2월 장기요양보험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설정된 3년의 유예기간이 이날로 종료돼 전국 400여 노인요양시설 중 기준 미달 시설 142곳은 ‘경고→영업정지’를 거쳐 폐쇄절차를 밟게 된다. 개정 시행규칙에 따르면 현재 임대시설인 요양원은 3월 1일부터 토지 및 건물 소유권을 가져야 운영이 가능하다. 시설 기준도 입소 노인 1인당 23.6㎡로 강화된다.

요양시설 관계자들은 건물 소유 등을 원칙으로 한 개정 시행규칙이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강북구의 한 요양원 대표는 “정부 기준을 따라 건물을 매입하자면 최소 40억∼50억원이 필요한데 불가능한 얘기”라며 “2009년 5년 계약으로 150평(약 500㎡)을 임대했는데 지금 문을 닫으면 보증금 1억원과 시설비 2억원을 그대로 날릴 판”이라고 말했다.

당장 노인 환자들이 갈 곳도 마땅치 않다. 복지부는 전국적으로 2만6000여개 침상이 남아돌기 때문에 142곳 폐쇄의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자신한다. 하지만 142곳 중 70%는 공급이 부족한 서울 도심 시설이다. 당장 5곳이 문을 닫는 강북구의 경우 ‘합법’ 시설은 구립을 포함해 단 두 곳에 불과하다.

한단협 이정환 공동대표는 “복지부가 민간 요양시설을 늘리기 위해 전국을 돌며 설명회를 한 게 불과 4년 전이고 우리는 그때 기준에 따라 투자했을 뿐”이라며 “마음대로 기준을 바꿔놓고 책임을 모두 민간에 떠넘기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지부 관계자는 “이미 3년의 시간을 줬기 때문에 기준 미달 시설은 소규모 생활시설로 전환하거나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