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차정식] 안식이 평등한 나라

입력 2013-02-28 19:57


사흘 전 경기도 성남시 사회복지 여성 공무원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결혼을 3개월 앞둔 상태였다. 과한 업무 스트레스로 근무하기가 어렵다는 유서가 발견됐다.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시류 가운데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목매는 판국인데 공무원 하기 힘들어 자살하다니? 보도 내용을 좀더 읽어보니 이런 의혹은 금세 해소됐다.

지난 5년간 복지 예산과 복지 대상자는 각기 45%, 157.6% 늘었지만 담당 공무원은 4.4% 느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자살한 말단 공무원은 보육료 양육수당 신청 대상자 2659명, 기초노령연금 신청 대상자 800명,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290명, 장애인 1020명 등을 상대로 다른 초보 공무원과 둘이 업무를 맡아오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왔다. 한 달 전 용인시 사회복지 공무원 자살 사건도 우발적인 해프닝이 아니었던 셈이다.

쉼은 생명 본연의 절대 가치

‘철밥통’의 세계에 이런 후미진 말단의 그늘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틈틈이 서류에 결재하면서 넉넉한 여유를 챙기며 골프장 출입 등 이런저런 사교에 힘쓰는 고위 공무원도 많을 것이다. 반면 발바닥에 땀 날 정도로 현장을 돌아다녀야 하고 엄청난 서류더미에 둘러싸여 결혼의 단꿈조차 꿀 여유마저 확보하지 못한 말단의 비애가 그 조직 속에 혼재되어 있었다.

말단의 자리를 지키며 격무에 시달리는 이들의 공통점은 안식이 결핍돼 있다는 것이다. 복지가 재정적 기준 일변도로 인식되는 현실 가운데 그나마 확보한 재정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모든 이들이 과잉도 결핍도 아닌 적절한 쉼의 여건을 보장받지 못하는 게 우리 형편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노동의 질이 평등한 안식의 환경 가운데 관리되지 못하는 일터에서는 아무리 구호가 요란하고 예산을 높인들 이러한 복지 양극화의 괴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성서는 안식을 하나님의 속성으로 강조한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마친 뒤 쉬셨듯 그의 백성들도 쉼을 통해 창조와 회복의 의미를 삶 속에 새기며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다. 십계명의 안식일 조항은 가족들은 물론 거기 딸린 종복들, 나아가 가축들에게까지 쉼의 은총을 허락할 만큼 포괄적이었다. 심지어 토지도 일정 기간 경작을 한 뒤에는 휴경을 통해 안식의 규례를 적용받았다.

성서의 안식일 전통은 안식년과 희년 등의 제도로 심화되면서 쉼이 생명 본연의 가치이며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생명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회복시키는 복지의 최우선권임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예수는 안식일을 율법적 금기체계로 강요하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인간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했을 정도다.

한쪽에서는 고액 연봉을 챙기면서 도장 찍어주는 일로 떵떵거리는 반면 다른 쪽에서 자살이 속출하는 나라는 정상적 나라가 아니다. 복잡한 세속의 편차가 인간을 지지고 볶아댄다 할지라도 먹을거리에 차등이 없고 쉼의 평등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이 원하는 공의의 나라다. 그런 세상은 문서 나부랭이의 정책이나 예산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산·노동을 적절히 분배해야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여유로운 고위 직책의 사람들이 매일 과도한 격무에 눌린 말단의 고통스러운 짐을 나눠지는 방향으로 제도 변혁이 필요하다. 그 인간의 얼굴을 한 제도와 함께 조직체의 모든 성원이 상대방의 안식을 챙겨주며 공존하는, 타자에 대한 배려가 요청된다. 무모한 밀어붙이기 식의 업무 방식에 순치된 채 상명하달의 인습적인 조직논리로 무장된 체제는 반드시 내부에서 함몰한다.

오래 버티면서 즐겁게 일하고 양질의 삶을 더불어 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주어진 예산과 노동의 총량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분배하고 모든 이들에게 균등하고 적절한 안식을 허락하라.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신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