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안경잡이의 나라
입력 2013-02-28 18:16
보청기와 안경은 청력과 시력의 향상이라는 목적은 비슷한데도 사회적 인식은 다르다. 최근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보청기 총리’ 문제가 거론된 반면 ‘안경 총리’는 아예 ‘꺼리’가 안 됐다. 그것은 안경이 지닌 패션 기능, 혹은 미디어에서 보여준 지적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애체’라고 불리던 안경은 근대의 문물 같지만 역사는 400년이 넘는다.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이 안경을 썼다. 몇 년 전 방영된 TV 드라마 ‘이산’에서 정조(1752∼1800)도 안경을 착용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초상을 의뢰받은 김호석 화백은 치밀한 문헌연구 결과 기존 초상과 달리 안경 쓴 모습으로 결론 지었다.
역사상 안경의 종주국은 이탈리아다. 13세기에 발명했고, 14세기에 안경 쓴 사람이 그림에 등장하며, 15세기부터 대중화됐다. 중국에서는 “원나라의 늙은 신하들이 거북등껍데기로 싼 볼록렌즈를 쓴다”는 기록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나오니 13∼14세기 특권층이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는 경주 남산의 수정을 깎아 만든 남석안경이 17세기에 등장한다.
걱정스러운 것은 노인이 아니라 어린 학생들이다. 그제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초·중·고생 56%가 한쪽 시력이 0.7 이하였다. 안경이 필요한 아이들이 절반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시력 이상’ 비율은 2008년 42.7%에 비해 13.3% 포인트나 늘어났다. 또한 초등학교 1학년 26.2%, 중학교 1학년 64.4%, 고등학교 1학년 70.9%처럼 학년이 올라갈수록 높아졌다.
사정이 이러니 건강한 육체가 필수적인 직종조차 안경잡이가 넘쳐난다. 사관생도나 최전방 관측병, 소방관도 안경을 끼고 나온다. 북한 사진을 유심히 보면 군사퍼레이드에서 대전차로켓을 든 병사들이나 행진하는 여군은 물론 노령의 군 수뇌부까지 대부분 맨눈이었다. 호주나 뉴질랜드 등 이른바 ‘청정국’에 가면 안경을 쓴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시력이상의 원인은 TV, 스마트폰, 컴퓨터 등 전자기기가 범람하는 생활환경 때문이다. 여기에다 눈 나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풍토도 한몫 한다. 그러나 눈이 나쁘다는 것은 분명한 장애다. 안경잡이는 약골이다. 스포츠 등 신체활동에 큰 제약을 가져온다. 눈을 보호하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있어야겠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