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박종록] 경제민주화, 자유와 책임
입력 2013-02-28 18:16
자유와 책임은 서로 충돌하는 개념인가. 특히 경제활동과 관련해 경제주체들의 합의와 자발적 선택을 존중하는 자유시장주의와 책임과 규제가 없는 시장은 공평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하므로 경제적 정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바로 잡을 때 이룩된다는 공평주의 내지 책임주의가 경제주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또는 정치지도자들의 이념적 기조에 따라 그 우선순위와 명분이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독과점에 의한 가격 폭리와 구제금융 지원으로 인한 세금 부담, 재벌의 순환출자에 의한 지배구조 강화와 골목상권 장악 등을 예시하면서 재벌과 대기업의 도덕성과 책임의식 결여를 지적하고 정부의 적절한 규제와 지도가 필요하다는 데 대체로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정의로운 사회가 이룩되기를 바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로운 사회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사회라고 하면서 도덕과 법률은 좋은 삶을 위해서 가치중립을 지켜서는 안 되고 부단하게 인간의 탐욕을 억제시키는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반면 임마누엘 칸트 이후 근대 정치철학자들과 경제학자들 대부분은 정의로운 사회란 각자가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고, 각자가 자유로운 의사로 좋은 삶을 선택해야 하므로 도덕과 법률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다원화된 사회에서 무엇이 미덕이고 무엇이 악덕인지 어떻게 가릴 것이며, 누가 판단하겠는가. 더구나 자기의 입지에 따라 각자 다른 논리와 근거를 대는 우리의 이중적 모습은 탐욕스러운 개인의 행동에 대해 제재를 가함으로써 공동선을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는 미덕을 지지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는 자유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독과점으로 인한 가격 폭리의 예를 들어보자.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로 생필품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어려운 시기에 일부 업체가 그야말로 ‘불행을 뒤따라온 약탈자’가 돼 평소 가격의 몇 배로 폭리를 취하는 경우 소비자는 자신에게 선택의 자유도 없이 부당한 구매를 강요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도를 넘어 남의 고통을 이용하는 공급자의 탐욕에 분노를 터뜨릴 것이다. 그러나 공급자의 입장에서 또는 일부 냉철한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공정가격’이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일시적일 뿐 금세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이 창출돼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역설한다. 나아가 화가 난다고 해서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장사꾼을 악마로 만들면 과연 우리의 분노가 없어지고 실보다 득이 더 많아지겠는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1년 금융위기를 맞아 자국의 거대은행들이 줄도산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이 닥쳐 플로리다주가 물바다로 변해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공황상태를 겪자 의회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연설로 민심을 안정시키고 관련 규제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여기는 미국입니다. 우리는 부를 헐뜯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성공은 포상을 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화가 나는 이유는 실패를 하고도 포상과 지원을 받았고, 남의 불행으로 자신의 탐욕을 채우며 그 포상과 지원은 국민들의 세금에서 지출되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인간은 자기성찰만으로 정의의 의미나 최선의 삶의 방식을 발견하기에는 보편적 수준의 사람으로 볼 때 그 탐욕과 본능에 비추어 기대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길은 의회가 법률로서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상반되는 이해관계 집단 사이에 가치중립적인 경계범위를 설정하고 정부는 그 범주 내에서 경제주체들이 자율적으로 최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박종록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