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고승욱] 전교조,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입력 2013-02-28 18:16
“강경한 대정부 투쟁은 단결력 높이겠지만 국민들의 지지 받기는 힘들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또다시 사회적 논쟁의 한 가운데에 섰다. 고용노동부가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개정하지 않는다면 전교조의 법적지위를 박탈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하면서 시작된 논쟁이다. 노동부는 평소 업무를 수행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는 시기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이 문제는 새 정부가 지향하는 노동정책의 방향을 가늠하는 잣대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 ‘새시대교육운동’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등을 가르친 혐의로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기소된 사건까지 겹치면서 전교조를 비롯한 노동계의 기류는 심상치 않다. “새 정부가 노동계에 대한 대대적인 공안탄압을 시작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 위에서 23년을 보낸 전교조의 역사를 생각하면 지금의 논쟁은 새로울 것도, 달라진 것도 없다. 1999년 1월 교원노조법 제정으로 합법화된 전교조에게 “법을 지켜라”는 요구가 쏟아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진 오랜 숙제일 뿐이다. ‘통일교육’, 민주노동당 가입 및 당비납부 등의 사건들도 현행법을 인정하느냐 여부가 핵심이었다.
해직자의 조합원 인정 여부를 다투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전교조의 합법적 활동의 근거가 된 교원노조법은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해고가 인정된 교원에게는 노조원 자격이 없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전교조는 2010년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벌였으나 패소했다. 전국공무원노조도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합헌이라는 결정이 나왔다. 전공노는 2009년 법적 지위를 박탈당해 지금까지 법외노조로 남아 있다. 정부가 전공노를 합법노조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한 이후 “전교조만 예외냐”는 여론이 거셌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교조는 “악법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조합원의 자격요건인 교원을 학교에 고용된 사람이 아니라 교원의 자격을 가진 사람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일선 학교가 개별 사업장을 구성하므로 전교조는 산별노조의 조직형태를 갖는다는 논리도 제시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실업자, 퇴직자에게도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등 해직자의 노조가입은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노동기준이라는 주장도 했다.
“사용자가 멋대로 만든 악법 조항을 핑계로 노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패악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라는 전교조의 공식 입장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이는 결국 ‘법외노조 공작에 맞서는 강도 높은 투쟁’으로 이어졌다. 지난 23일 열린 전국대의원대회는 민주노총 및 전공노와의 전국 동시다발 농성, 촛불집회, 단식수업 진행을 선언했다. 지금 전교조는 합법의 영역에서 벗어나 ‘이념적 원칙’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새 정부 출범은 전교조를 비롯한 노동계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산층 재건을 위해 고용률 70% 달성을 약속했다. 지난 5년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 고용률은 64% 안팎이었다. 박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려면 고용률을 매년 1% 이상 높여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 선도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아직 구상 단계이므로 새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실시, 정년연장 등을 140개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이루려면 임금삭감이 논의될 수밖에 없다.
노동계가 얼마나 수긍하느냐에 따라 박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질지 여부가 갈릴 수 있는 것이다. 전교조 입장에서는 노동계의 협조가 절실한 현 상황을 이용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법외노조로 내몰려 강경한 대정부 투쟁을 벌이는 것은 내부적 단결력을 높일 수 있겠지만 1989년 전교조가 출범할 때처럼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