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잘 파는 장사꾼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입력 2013-02-28 17:10


장사의 시대/필립 델브스 브러턴/어크로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모로코 항구도시 탕헤르. 이곳 상인들은 이슬람 상술의 대명사다. 그들은 손님의 결혼반지에서부터 치아 상태, 거친 손, 살짝 내비친 허영기나 긴장의 표정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과 흥정할 땐 일부러 따분한 표정을 지어야 할 것이라고 현지 여행안내서는 설명한다.

‘마지드’라는 별명의 상인은 이곳에서도 전설로 불리는 사람이다. 양탄자, 실크셔츠에서 은식기, 산호에 이르기까지 관광객이 좋아할 거의 모든 물건을 파는 그의 가게 방명록엔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과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서명이 있을 정도. 비결이 뭘까.

“저는 절대 아름다운 물건을 연구하지 않아요. 대신 사람들이 아름다운 물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구합니다.” “장사는 낚시질과 같습니다. 고기를 잡았을 때 너무 세게 당기면 낚싯줄이 끊어집니다. 풀어줬다 당겼다 풀어줬다 당기기를 반복하면서 고기를 지치게 만들어야 해요.”

이 책은 요약하자면, 전 세계의 전설적 ‘장사꾼’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을 심층 취재해 뽑아낸 장사의 기술과 열정, 그리고 철학을 담았다.

대개, 책을 쓰는 일의 출발은 궁금증이다. 이 책도 그렇다. 영국 일간 데일리 텔레그래프 파리지국장이던 저널리스트 필립 델브스 브러턴은 어느 날, 전 세계 비즈니스 리더들을 배출하는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궁금해졌다. 직접 알아보기 위해 사표를 던지고 하버드 MBA과정에 입학한다.

그는 교과 과정에 장사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세일즈 과목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어리둥절했다. 세일즈는 실용서나 성공한 세일즈맨의 회고록에나 어울리지 정식 과목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주제로 취급받고 있었던 것이다. 세일즈에 대한 폄하의 이면에는 교수들의 이해타산도 깔려 있다. 경영대학원에서 종신 재직권을 따내려면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야 하는데, 이들 학술지에선 재무와 마케팅, 전략과 경영만 중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일즈는 경영의 핵심이자 현실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통로가 아닌가. 저자는 이렇게 중요한데도 학문의 영역에서 찬밥인 세일즈에 관한 특별수업을 엮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썼다. 부제대로 마케팅 원론에는 없는 세일즈의 모든 것이다.

책은 이슬람 상인의 흥정술과 상품 정보를 이야기로 만들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홈쇼핑, 일본 보험 판매왕의 인맥관리술, 예술을 상업화해 우아하게 돈버는 미술상의 노하우, 이민자들이 생존을 위해 맨몸으로 펼치는 영업의 현장을 심층 인터뷰와 관찰, 분석을 통해 생생하게 전한다.

장사야말로 심리학의 최전선임을 알 수 있다. 아무리 험한 일을 당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회복탄력성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물건을 파는 것은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가장 큰 실험실이라고 책에 등장하는 세일즈의 구루들은 말한다.

“홍보의 목적은 사람을 홀리는 데 있다.”

“미술품이 아니라 지위를 파는 것이다.”

“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영웅이라고 느끼게 해라.”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이런 전설적 상인들에게는 보통 사람에게서는 보기 힘든 끼와 열정, 그리고 품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로코 상인 마지드가 “때론 죽이고 싶은 손님도 있지만 절대 화를 내서는 안 된다”며 ‘품이 넓은 장사꾼’론을 펼치는 게 한 예다. 또 미국의 홈 쇼핑 스타 토니 설리번이 우연히 박람회에서 ‘스마트 대걸레’를 보자 이게 필요한 곳은 미국 서부라는 걸 직감하고 과감히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사연, 세일즈를 수련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린 미국 세일즈맨 오기 투라크가 카펫 까는 기술을 팔기 위해 일주일이 걸려서라도 지역의 200개가 넘는 카펫 업체에 모두 전화를 걸었던 대목 등에서 그렇다.

장사를 밥벌이로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 자체가 뭔가를 파는 일이다. 누구나 날마다 가족, 친구, 고용주에게 뭐든 팔면서 산다. 자식에게 열심히 공부하면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는다는 믿음을 파는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세일즈맨의 이야기는 우리 삶을 관통하는 인문학이기도 하다.

그러더라도 이 책을 가장 권하고 싶은 이는 사표 던지고 장사 한번 해볼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 책은 어떤 실용서보다 매섭게 장사하는 사람의 조건에 대해 말해줄 것이다. 문희경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