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딱딱한 인문학 뒤집고 비틀어 보기… 문학동네 ‘위대한 순간’ 시리즈 1차분 3권

입력 2013-02-28 17:00


출판사 문학동네가 연세대 인문학연구원과 함께 ‘위대한 순간’ 시리즈 간행을 시작했다. 한 사회의 개인이나 사건의 특수성이 역사와 맞물려 보편성을 획득하는 정점을 ‘위대한 순간’이라고 명명하면서 인문학의 이정표를 새롭게 설정해 보겠다는 게 출간 의도. 1차분은 3권이다.

1권 ‘바로크와 나의 탄생’(윤혜준)은 ‘햄릿과 친구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가장 유명한 ‘햄릿’의 독백이나 대사에서 ‘나’를 지칭하는 단어 ‘I’가 가장 빈도수가 높은 데 착안해 바로크 시대의 근대적 주체인 ‘나’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있는 게 영문학자인 저자의 독특한 접근 방식이다.

바로크는 세속적 근대의 요소들 대부분이 태동한 시기였지만 동시에 믿음과 영성, 구원와 내세 등 기독교적 사유방식이 생생하게 숨쉬던 시대였다. 세속과 성(聖)의 어중간한 동거가 바로크라는 것인데, 저자는 이러한 이중성의 동거가 우리 시대에도 반복되고 있음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2권 ‘장자, 순간 속 영원’(정진배)은 2500년 전에 출현한 ‘장자’에서 40개의 소주제를 뽑아내 장자 사상의 현재성에 주목하고 있다. 예컨대 장자의 한 구절인 ‘하늘은 푸른 색인가’를 소주제로 삼아 전개한 저자는 “하늘이 실체가 없듯이 파란색이라는 색깔 또한 고정된 실체가 없다”며 나름 독특한 의견을 개진한다.

그렇다면 장자는 왜 ‘하늘은 푸른 색인가’라고 물었던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 역시 독창적이다. “장자는 우리가 스스로를 한없이 왜소하고 초라하게 느낄 때 한번쯤 끝없이 펼쳐진 우주 허공을 바라보라고 주문한 것이다.”(31쪽) 삶이 힘들고 질퍽거릴 때 하늘을 올려다보자는 것인데 틀린 말은 아니지 않겠는가.

3권 ‘철학의 모비딕’(김동규)은 서양 철학에 위대한 순간을 가져다준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준다. 특히 하이데거 철학과 김수영(1921∼1968) 시론의 연관성을 다룬 4장이 흥미롭다.

딱딱한 인문학을 이만큼이나마 뒤집고 비틀어 보는 시리즈가 드물기에 새삼 눈에 띈다. 각 1만2000원.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