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석운]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입력 2013-02-27 19:21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국민’이었고 그 다음이 ‘행복’이었다. 박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며 주요 국정의 목표를 ‘행복’으로 제시했다.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 복지와 교육, 문화와 안보 모두 앞뒤 수식어로 ‘행복’이 붙었다. 박 대통령은 통일과 국제정치도 ‘행복’이라는 키워드로 묶었다. ‘한반도 행복시대’, ‘지구촌 행복시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취임사에는 ‘행복’이 넘쳐났다.

행복이라는 말은 역설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단어다. 행복을 추구하는 객관적 상황이 진짜 행복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렇다. 많은 국민들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이 우리 국민들의 높은 불행감을 입증하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지난해 전 세계 148개국 15세 이상 국민 1000명씩을 뽑아 조사했더니 한국의 행복수준은 97위로 나타나기도 했다.

‘행복시대’ 과잉, 현실의 역설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이렇게 낮은 건 여러 요인이 있다. 실질적인 소득증가는 제자리이거나 뒷걸음치는 데 반해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학생들은 학업스트레스가 힘겹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좌절한다. 직장인들은 고용불안 속에 주택비와 자녀 교육비를 마련하느라 하우스 푸어, 에듀 푸어로 전락했다. 저출산 고령화 속에 노인빈곤 확산은 은퇴 이후를 암울하게 한다.

행복을 주창하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도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대선에서 승리한 지 두 달이 지났고 임기를 시작한지 나흘째를 맞지만 정부조직개편 논의가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정부 출범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개인사를 돌아봐도 흉탄에 부모를 잃은 충격과 상처가 깊게 남아있어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보인다.

시대적 상황과 개인의 아픔이 행복과 거리가 먼데도 ‘행복시대’를 강조하는 그의 취임사에서는 현실배반적인 역설이 읽혀진다. 현실을 부정하고 이를 극복하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마저 느껴진다. 비록 북극성이 영원히 닿을 수 없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먼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큰 위안이 되듯이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는 미래의 희망을 품게 해준다.

물론 경제적 수준과 물질적 조건이 행복을 결정하는 전부는 아니다. 국민행복을 국정의 명시적인 최우선 정책으로 삼는 나라도 있다. 히말라야 산맥의 소국 부탄이 그 예다. 이 나라에서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는 GNP(Gross National Product, 국민총생산)가 아니라 GNH(Gross National Happiness, 국민총행복)다. 정부가 1976년부터 국민행복연구센터를 설립해 다양한 법제화를 시도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과감한 복지정책을 도입했다. 그 결과 1인당 소득이 1000달러에 불과한데도 국민들의 97%가 ‘나는 행복하다’고 답을 한단다. 미국 일본 등 소위 선진국의 학자들이 이 나라를 연구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말의 성찬에 그쳐선 안돼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행복시대’가 수사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박 대통령이 워낙 약속과 신뢰를 중시하기 때문에 설사 정치적 손해를 보더라도 실천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그러나 정부는 행복시대를 열어갈 수단을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인수위가 활동을 마감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를 밝혔지만 재원 마련 계획과 일정을 내놓지 못한 것이 한 사례다. 정부조직개편이 지연되면서 공직자들의 동요가 겹쳐지고 국정 장악력과 추진력이 떨어지는 조짐도 걱정스런 대목이다.

전석운 정책기획부장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