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만 관객 돌파 앞둔 영화 ‘베를린’ 주인공 하정우 “온몸 던진 연기에 만족… 두달간 휴가 떠날 것”
입력 2013-02-27 21:51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의 700만 관객 돌파(26일 현재 670만명)를 앞둔 25일 저녁,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음식점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주인공 하정우(35)는 “이제 4월까지 휴가다. 아무것도 안하고 푹 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러브픽션’과 올해 ‘베를린’ 주역을 맡고 최근 자신이 연출한 ‘롤러코스터’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는 지난 21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도 “700만 돌파 시점부터는 영화가 그냥 굴러갈 것이니 나도 휴식에 들어가려 한다. ‘베를린’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얘기를 하자”고 했다. ‘베를린’ 연기를 어떻게 했고 흥행 비결이 무엇이고 하는 얘기보다는 그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품어왔던 것들을 솔직하게 털어놓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배우 김용건씨)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꿨어요. 솔직히 예뻐 보이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추격자’와 ‘황해’에 이어 ‘베를린’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았는데, 어떤 배우든지 마찬가지겠지만 고되고 힘들죠. 주변에서는 너무 소비적으로 연기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도 많이 해요. 하지만 온몸을 던져 감정이 살아난다면 배우로서 행복한 거죠.”
‘베를린’에서 아내(전지현)를 납치한 차량을 쫓아가다 놓치고는 무릎을 꿇으며 허탈감과 분노 섞인 감정을 드러내는 하정우의 눈빛 연기가 압권이다. “북한 첩보원 표종성의 마음이 흔들리는 지점이어서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는 결국 아내가 죽고 복수를 다짐하는 설정이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델로’ 같다고 설명했다.
하정우는 지난해 독일에서 촬영하는 동안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개인전을 3차례 가진 그의 대표작은 자신의 배우 생활을 표현한 ‘피에로’다. 신작들을 모아 3월 9일부터 미국 뉴욕 첼시의 한 화랑에서 전시를 연다. “사실 그림 그리는 게 저에겐 휴식이에요. 전시 오픈에도 참가하고 뉴욕 화랑들도 둘러볼 계획이에요. 개인적으로 미국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와 잭슨 폴록을 좋아해요.”
그림 얘기가 나오자 그는 “연기나 잘하지 그림은 무슨?”이라는 뒷말이 나올까 두렵다고 털어놨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 전시로까지 이어져 부끄럽기도 해요. 2010년 첫 개인전 때는 공포감마저 들었어요. 이왕 엎질러졌으니 끝까지 파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떤 이들은 제 그림을 보고 정신분열증 걸린 것 같다고 하는데 붓을 잡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5월 개봉 예정인 감독 데뷔작 ‘롤러코스터’는 한류 스타 마준규가 탄 일본 도쿄발 김포행 비행기가 태풍에 휘말려 추락 위기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이다. “‘베를린’ 촬영을 끝내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큰 산을 하나 넘었구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분간 제 자신에게 휴식을 주자고 다짐했는데 전에 류승범이 들려준 비행기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거예요.”
휴식 시간에 그는 ‘롤러코스터’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메가폰을 잡았다. “지금 나를 위해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고민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지쳐있기도 했는데, 앞으로 더 건강하게 오래 영화를 찍기 위해선 감독의 존재에 대해 잘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감독을 해보니 ‘내가 너무 많은 사람들을 무너뜨렸구나’ ‘철없이 굴었구나’라고 반성하게 됐어요.”
이병헌처럼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전에는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이제 좀 시시해졌다. 한국 정서에 맞는 영화가 더 소중하다”고 답했다.
하정우는 차기작인 김병우 감독의 ‘더 테러 라이브’에서 테러범과 맞서는 앵커로, 윤종빈 감독의 ‘군도’에서 백정 출신 의적단으로 출연한다. 휴가 같지 않은 휴가를 보낸 후 그의 손에는 또 어떤 것이 들려 있을지 궁금하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